[정재영 칼럼]목회자 이중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등록일:2018-11-06 08: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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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이중직의 현실적 필요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최근 한국 교계에서 목회자 이중직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에 있었던 각 교단 총회에서 다시 이중직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보수 교단들은 여전히 이중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나 생계형 이중직에 대해서는 조건부로 예외로 정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교회 현실을 고려할 때 목회 이중직은 점차 불가피한 사실로 다가오고 있다. 신학교 졸업생 수와 은퇴하는 목회자 수, 선교사로 나가는 수, 그리고 전체 교회 수 등을 종합해보면 매년 수백 명의 목회자가 과잉 공급되고 있고, 최근 10년 사이에 수천 명에 이르는 목회자가 임지를 찾지 못한 채 무임 목사가 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목회자 수급 불균형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1년 동안 설립되는 교회는 많아야 2,000~3,000개 정도이지만, 매년 그 두 배 이상의 목회자가 배출되고 있으니 사역할 교회가 부족한 것이다.

그나마 매년 수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고 교회를 개척해서 5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경우는 3%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역지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지방 신학교나 군소 신학교를 나온 목회자들은 더더욱 임지를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들도 청년 실업자들처럼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심지어는 학력 부풀리기로 물의를 빚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목회자 과잉 배출은 과도한 교회 개척으로 이어져 개교회들 사이에 또는 목회자들 사이에 지나친 경쟁의식을 유발시키고 교회의 권위와 신뢰성을 상실시켜 결국 기독교 선교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많은 개척교회들이 신도시로 몰려 신도시마다 교회가 난립하게 되고, 원하지 않더라도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해 교회 건물이나 예배처소가 부동산에 매물로 줄줄이 나와 기독교 전체의 신뢰가 저하되는 등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목회를 전통적인 관점에서 ‘교회 안에서의’ 활동으로만 한정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제한적으로 인정해온 기관 목회나 전문직에 한정된 이중직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이중직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규모가 큰 교회 목회자나 박사 학위를 가진 목회자가 신학교 강의를 하면서 두 개 이상의 수입원을 갖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이중직을 금했다면, 현재의 상황은 생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이중직을 하면서 죄책감을 갖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으로는 금지하는 교단조차도 이중직을 하는 목회자들에 대하여 징계나 처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선교적 이중직의 활성화

이제는 이중직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며, 목회자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고 목회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목회 영역의 개발이 오히려 현실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목회의 범위를 교회 밖의 다양한 일이나 활동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기존의 관점에서는 목회 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영역에 대해서도 자비량 목회의 일부로 이해하거나 그 영역 자체를 선교 영역이라고 이해한다면 훨씬 폭넓은 일에 대해서 목회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목회 이중직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생계형 이중직, 자비량형 이중직, 선교형 이중직으로 나뉠 수 있다. 생계형 이중직은 오로지 생계 수단으로 이중직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지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부모 봉양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 이중직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다음으로 자비량형 이중직은 목회를 하는 데에서 사례비를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직업 활동을 통해 사례비를 충당하는 경우이다. 자비량 선교를 하듯이 목회도 자비량으로 하는 것이다. 생계형 이중직과 자비량형 이중직은 외형상 큰 차이가 없으나 이중직의 동기와 의도에서 차이가 있다.

생계형 이중직은 본래 자비량 목회를 할 의도는 없었으나 교회 형편상 일정 수준의 사례비를 받지 못해 타의로 이중직을 하는 경우이고, 자비량 이중직은 본래부터 성도들의 헌금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중직을 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선교형 이중직은 자비량 목회와 일정 부분 중첩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이중직 자체를 선교 활동으로 이해하고 직업 활동을 통해 선교를 이뤄가는 경우이다. 자비량 이중직이 목회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중직을 하는데 비해 선교형 이중직은 직업 활동 자체가 넓은 의미의 목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기관 사역이나 특수 목회를 하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최근에는 ‘미셔널 처치’(missional church)의 관점에서 선교형 이중직을 의미 있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여기서 특히 선교형 이중직의 하나로 마을공동체 운동 참여형 이중직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 마을공동체 운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데, 이것은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에서도 전통적인 공동체가 붕괴된 후, ‘경쟁과 배제’로 표현되는 개인주의 사고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려와 포섭’을 중시하는 공동체 운동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운동을 교회와 관련하여 의미를 갖는 이유는 교회 역시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기업, 주민 등과 더불어 지역 사회의 주요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회만큼 지역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조직들도 없다. 최근에는 각 지자체에서 마을공동체와 관련된 활동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마을활동가로 지역공동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보다 넓은 목회의 지평을 향해

교회는 언제나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해져온 이후 끊임없이 교회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우리 사회는 그런 교회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사회는 언제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간다. 교회는 이렇게 변해가는 사회와 사회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도 똑같은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전통은 사회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해석되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변화하는 사회에서도 변함없이 기독교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삶의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고 시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신학적인 고찰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목회자 상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보다 복잡하게 변하고 있고 더 이상 목회자의 역할을 교회 안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공동체 자본주의와 대안 경제 운동에 목회자가 참여한다면 많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서울을 비롯한 여러 자치단체장들이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행정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행정의 지원 이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공감대 형성을 통한 역량 강화이다. 주민들이 실제로 그러한 일에 참여하거나 감당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 차원에서 위에서부터(top down) 전개되면 본래의 취지가 왜곡되기 쉽다.

따라서 이런 일에 목회자와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며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와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사회를 공동체화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목회의 지평도 더욱 의미 있게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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