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1980년 암울한 시대에 좌절하고 고뇌하던 수많은 청춘을 위로한 노래 '청춘'의 가사 일부다. 40여 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2018년의 청춘은 여전히 '청춘'을 노래한다. 그렇다면 청춘의 아픔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의 초상'일까? <위클리굿뉴스>는 창간 1주년을 맞아 주변의 크리스천 청년들이 처한 실제적인 고민을 요청해, 청년 멘토들과 함께 이에 대해 짚어보고 해답을 모색하는 특집 기획을 연재한다. 이번호에서는 청년사역과 목회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를 만났다.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위클리굿뉴스
  
Q. 힘들게 직장에 들어왔는데, 일에 치여 말씀과 기도생활이 어려울 때가 많다. 직장을 다니며 멀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고민이다.
 
송태근 목사(이하 송): 말씀과 기도는 중요하고 거룩하게 생각하면서, 일상의 일(work)은 거룩함을 방해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은 중세 이원론적 발상에서 기인한 생각이다. 중세는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을 구별했다. 그래서 성직자와 세속인을 구별했고, 교회와 일상을 구별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구별을 없앴다. 칼빈은 일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성직'이라는 말을 없앴다. 일에 치여 사는 것도 우리는 '성직'을 감당하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 바울도 주께 하듯 감당하라고 권면하고 있다(골 3:23). 이런 생각을 갖는다면 말씀과 기도생활이 어렵다는 것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대신 그 외의 시간에는 말씀과 기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래 그림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던 빈센트 반 고흐의 <신발>이다. 고흐는 자신의 작품 중 이 그림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일에 최선을 다한 후 낡은 신발을 보며 삶에 대해 위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즉 내게 맡겨 주신 일을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일'임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빈센트 반 고흐 <신발> ⓒ위클리굿뉴스
 
Q.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친구들이 모두 결혼해 조급한 생각마저 든다. 배우자 기도를 할 때, 어떤 부분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까?
 
송: 결혼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선택의 근거를 성경에 두고,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코 조급해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조급한 마음으로 아무나 만나서 결혼하는 것은 불행을 재촉하는 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자녀를 양육하는 생물학적 결합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위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듯 좋은 조건이 결합해서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경제적 결합이 돼서도 안 된다. 경제적 결합을 추구해서 결혼했는데 파산하면 다음은 이혼밖에 없다. 결혼은 가치관이 합해지는 과정이다. 나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또 질병과 갈등이 있더라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렘브란트의 <선술집의 방탕아>이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할 때를 묘사한 그림이다. 흥미로운 것은 방탕한 남자의 얼굴에 렘브란트 자신의 얼굴을, 음탕한 여인의 얼굴에 자신의 아내 사스키아의 얼굴을 넣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렘브란트의 신앙고백과 같은 그림이다. 렘브란트는 그림으로 일약 유명한 화가가 됐고, 그 '조건'을 토대로 상류층 여인을 아내로 얻었다. 그러나 신앙적인 관점으로 볼 때, 그것이 방탕한 아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음을 이렇게 그린 것이다. 지금도 '믿음의 배우자'를 외치고 있지만, 속마음은 돈 많고, 외모가 좋고, 조건이 훌륭한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지 않은가? 바른 우선순위를 통해 배우자를 결정하시기를 소망한다.
  
 ▲렘브란트 <선술집의 방탕아> ⓒ위클리굿뉴스
 
Q. 요즘 교회엔 성비로 놓고 보면 형제보다 유독 자매가 많다. 그래서 일부 자매는 비기독교인과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 크리스천을 만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 고민이다.
 
송: 우선순위를 갖고 결혼하기를 권한다. 결혼해서 자칫 삶이 불행해지거나 오히려 신앙을 떠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결혼을 전제로 누구를 만나야 할지를 '선택'으로 생각하지 말고, 결혼 자체도 하나의 '선택'으로 생각하기를 바란다. 결혼은 가정을 이루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인생을 가정에 희생해야 하는 시작이다. 신앙을 희생하면서 해야 하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
 
두 작품 가운데 어떤 그림이 훌륭해 보이는가? 둘 다 도메니코 페티라는 화가가 그린 <이 사람을 보라>이다. 왼편은 1610년에 그림 '걸작'이고, 오른편은 1605년에 그린 '습작'이다. 즉 왼편을 완성하기 위해 오른편 그림을 연습 삼아 그렸던 것이다. 왼편의 걸작은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돼있다. 그러나 워낙 우피치 미술관에는 르네상스 걸작품들이 많아서 도메니코 페티의 그림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오른편 습작은 독일 뒤셀도르프로 팔려나가서 현재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궁전의 복도에 걸린 초라한 그림이다.
 
그러던 19세기에 독일로 유학을 온 영국 여성 프란시스 하버갈은 이 그림 앞에 선 순간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주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이 물음 앞에 인생이 무너지고 회심을 한다. 그리고 바로 영국으로 귀국해서 일생 독신으로 살면서 수많은 찬송가를 남긴다. 성찬식 때마다 부르는 '내 너를 위하여'라는 찬송가는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찬송가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시를 썼던 하버갈 여사를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신앙을 희생하면서 해야 하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란다.
 
 ▲도메니코 페티 <이 사람을 보라> ⓒ위클리굿뉴스
  
Q. 결혼 후 위기가 닥쳤고, 배우자를 용서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송: 아래 그림은 '인상주의'를 열었던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다. 그가 사랑했던 아내 카미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왼편 그림은 아내와 자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평온해 보인다. 반대로 오른편 그림은 1879년에 그 아내가 임종하던 순간에 그녀를 그리고 있다. 사랑하던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며 그림을 그린 모네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남겨진 아이는 어떻게 될까? 모네는 지독히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며 화가의 명성을 쌓던 중 찾아온 아내의 죽음은 모네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몇 마디 글을 써서 '용서해라' 혹은 '이혼해라'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볍고 무책임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렇다. 처음 배우자를 만났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마음인가? 처음 교제를 했을 때는 배우자를 하나의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부부가 불화를 겪는 이유는 결혼 전에는 서로가 '존재'로서 가치를 지녔지만, 결혼 후에는 가정을 영위하는 '도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내가 배우자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배우자가 가정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겉돌지는 않는지, 경제적인 '도구'가 되지는 않았는지, 부부가 함께 점검해야 하는 부분이다. 혹 자녀가 있다면 반드시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는 기준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클로드 모네의 작품들 ⓒ위클리굿뉴스
(위클리굿뉴스 11월 11일, 47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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