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휩쓸고 있는 '박항서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축구 변방국가인 베트남이 지난해 10월 박항서 감독 부임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특히 지난 15일에는 동남아시아 월드컵이라 불리는 '아세안 축구대회'에서 '스즈키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박 감독은 이제 돌풍을 넘어 베트남의 신화가 됐다. '박항서 매직', '박항서 신화', '박항서 돌풍' 등의 찬사에 이어 이젠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의 다음가는 영웅으로까지 등극했다. 박 감독의 축구에 의해 베트남 국민들은 '아시아 축구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본 것이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박 감독은 연일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며 '국민 영웅' 반열에 올랐다.

박항서,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이유
 
"꼬렌 베트남! 꼬렌 박항세오!(파이팅 베트남! 파이팅 박항서!)
 
'박항서 매직'이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훔쳤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10년 만에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지난 15일 베트남 전역은 열광의 도가니였고, 경기장 안팎에서는 베트남 시민들이 국기인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같이 흔들면서 김 감독을 연호했다.
 
최근 베트남에서는 박항서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식음료·은행 광고에까지 박 감독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 TV에서는 연일 한국 드라마가 방송되고,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 곳곳에서는 K팝에 맞춰 군무를 추는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매출이 늘고 호감도가 오르는 등 경제 효과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대 우리 정부나 그 어떤 기업도 이뤄내지 못한 외적 성과를 박 감독 한 명이 올린 셈이다. 
 
박항서의 영향력은 스포츠를 지나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에게 우호 훈장을 수여하는 한편 '박항서 정신'을 베트남의 핵심 경제발전 모델로 응용할 계획을 시사했다. 응유옌 수언 푹 베트남 총리는 "박항서 정신을 국내 기업을 발전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성공사례 모델로 삼자"고 지시했다.
 
이러한 '박항서 열풍'의 요체는 '탈권위'에 있다. 축구선수들을 자식처럼 아끼면서 감동의 지휘력을 발휘한 게 박항서 축구를 우뚝 서게 했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박 감독은 권위를 내려놓고 인간적으로 선수들과 베트남 국민들에게 다가섰다. 이 때문에 현지 언론은 박 감독을 '파파 리더십'이라고 부르며 '마음을 훔치는 영적 지도자'라고 호평했다. 선수들의 강점과 약점을 간파한 안목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뿐 아니라, 아버지 같은 박 감독의 따스한 성품에 베트남 사회가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아시안게임 때는 박 감독이 선수들의 발을 직접 마사지해주는 모습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상 선수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양보하는가 하면 선수들이 먼저 입국 절차를 마칠 수 있게끔 입국심사 대기줄의 맨 끝에 선 모습 등은 베트남 언론서 스포트라이트와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또 현지 기업이 제공한 우승축하금 10만 달러도 베트남 축구 발전을 위해 쾌척해 큰 감동을 낳았다. 이에 젊은 층에서는 그를 인자하고 겸손한 이미지로 국민을 가족처럼 대하고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국부(國父) 호찌민에 비교하기도 한다.
 
 ▲박 감독은 10년 만의 결승 진출에 이어 우승까지 이끌어 베트남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파파 리더십' 베트남과 한국을 휩쓸다

이 같은 열풍은 국내서도 박항서 신드롬을 낳고 있다. 스즈키컵 우승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박항서 감독에게 훈장을 지급하라'거나 '베트남 명예대사로 임명하라'는 국민청원이 속속 올라오는 중이다. 한 청원인은 "한 명의 축구감독이 베트남 역사의 한 장을 쓰고,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관계에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적었다.
 
박 감독에게 열광하는 이 분위기는 현재 경제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제가 어렵고 개개인의 현실이 불안하다 보니 특정 인물의 성공신화에 더 열광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축구계서 사실상 퇴출당한 뒤에도 늦은 나이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성신여자대학교 김정섭 교수(문화산업예술대학원)는 "그가 다른 나라에서 거둔 성공이, 우리 모두의 축복이자 영광으로 여기는 측면이 있다"면서 "박 감독이 보여주는 ‘낮은 리더십’도 한 몫 했다. 베트남 선수들의 발을 마사지 해주거나 아픈 선수에게 더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등 미담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 같은 ‘낮은 리더십’이 대다수 사람들이 바라는 ‘리더 상’에 부합하면서 더 큰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도 알려진 박항서 감독은 경기 전후 하나님께 '초심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검열하며 나아가는 그의 자세는 대기업 갑질 등 각박해진 현실 속에서 새삼 큰 시사점을 준다. 박 감독의 수평적 리더십과 배려심, 인생역전 스토리 등이 모두에게 주목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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