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Sao Gabriel da Cachoeira)에 위치한 '검은강 상류 신학교'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인디오들이 모여 사는 브라질 아마존 검은강 유역. 빛깔이 검어서 검은강이라고 불리는 이 강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의 국경을 통과하며 흐른다. 아마존에 사는 인디오들은 이 강을 젖줄 삼아 듬성듬성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검은강의 상류 지역 중 하나인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Sao Gabriel da Cachoeira)에는 한국인의 이름을 딴 길이 하나 있다. 이 길의 이름은 '허운석 선교사의 길'이다. 아마존 인디오들을 위해 헌신하다 2013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故) 허운석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남편 김철기 선교사는 1991년부터 허 운석 선교사와 딸 수산나, 아들 지훈과 함께 아마존 선교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독충과 독사, 척박한 토양, 무더운 날씨로 인해 '녹색의 지옥'이라 불리는 아마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최근 치료차 한국을 찾은 김철기 선교사를 신촌교회에서 만났다. 김 선교사는 가장 먼저 아내이자 동역자였던 허 선교사 이야기를 꺼냈다.

"허운석 선교사는 아마존에 묻히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매장지를 태어난 고향이 아닌 아마존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 복음에 저항했던 사람들조차 허 선교사의 떠남을 통해 마음을 열게 됐습니다."
 
 ▲아마존에서 27년간 사역한 김철기 선교사를 지난 12월 22일 신촌교회에서 만났다.ⓒ데일리굿뉴스

녹색의 지옥이 '은혜의 강'으로
 
김 선교사 부부는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아마존으로 떠났다. '녹색의 지옥'으로 불리는 아마존, 그곳은 적응 자체가 불가능한 땅이었다. "뱀에 먹혀 죽든 창에 찔려 죽든 죽기는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생각했지만 연중 계속되는 폭염, 몸이 둥둥 뜨는 것 같은 습도, 시간대별로 나타나 온몸을 뜯는 벌레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환경이 사실은 하나님이 아마존을 보호하시는 방식임을 깨달았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이 이 같은 환경이 아니었으면 벌써 오래 전에 훼손됐을 겁니다."

늘 새롭게 적응해야하고 마음을 놓을 수 없기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김 선교사는 아마존에 세운 선교회의 이름을 '아마존 은혜의 강 선교회'로 지었다. 

환경뿐 아니라 문화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사고방식과 식생활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원숭이 머리가 요리로 나오고 악어 개미탕을 별미로 먹는다. 또한 이들의 영적 세계는 샤머니즘과 애니미즘이 지배하고 있어 복음에 적대적이었다. 저주하고 복수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다. 독충들과 벌레에 물려 상처로 짓무르고 피범벅이 된 선교팀을 보고 인디오들은 비로소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함께 나누고 같은 자리에서 고난 받는 것이 복음이구나 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마존에 오셨다면 이들과 함께 낮은 자리에 거하지 않으셨겠어요?"
 
 ▲2012년 언더우드 선교상을 수상한 김철기·허운석 선교사의 모습. 김 선교사는 이 사진을 볼때마다 '부끄럽다'고 말한다. 입술로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던 자신의 '위선'을 마주하기 때문이다.ⓒ데일리굿뉴스


김 선교사와 허 선교사가 아마존에서 일군 선교의 열매는 크다. '검은강 상류 신학교'를 설립해 지금까지 100여 명 이상의 졸업자를 배출해 그 중 80여 명이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강을 따라 거주하는 인디오 형제들을 돌보는 병원선 사역도 꾸준하게 진행 중이다. 많은 이들이 김 선교사 내외가 이룩한 사역의 결실들을 칭찬한다. 사역의 열매로 2012년에 허 선교사와 함께 '언더우드 선교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일은 많이 했지만 그 안에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종교적 야망이었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내 거룩한 야망을 쫓아 살았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연약한 존재인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마존을 품겠다, 인디오 형제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지요. 저는 위선자 중에 위선자였습니다."

김 선교사는 '주님의 일'을 '주님'과 착각하는 이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돌이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달라요. 이제라도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인해 살려고 합니다."
 
24년 만에 '말라리아 신고식' 치러
 
허 선교사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겨진 김 선교사는 건강이 많이 약해졌다. 충격과 아픔으로 불면증이 왔고 면역력 약화로 각종 질병에 노출됐다. 뜨거운 적도의 태양에 상한 눈은 안압이 높아졌고 녹내장이 왔다. 각종 성인병으로 몸은 성한 곳이 없다.

검사와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김 선교사는 "인디오 형제들은 늘 말라리아로 고생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껏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어요. 저들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하며 말라리아를 구했는데도 말라리아를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2015년 4월에 댕기열과 말라리아를 같이 앓게 됐습니다. 브라질에서도 굉장히 드문 경우지요. 그리고 6월에는 악성 말라리아, 10월에 다시 말라리아와 댕기열에 걸렸습니다. 1년 만에 24년 간 걸리지 않았던 말라리아에 세 번이나 걸린 거죠. 그제야 비로소 아마존 선교사가 된 것 같았어요. 내 사역의 드러냄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 자아와 육신이 약해져 인디오 형제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인디오 마을 제루살렝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김철기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그는 아마존 사역의 고단함이 밀려 올 때 허 선교사와 함께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모질고 악하면 절구를 찧는 고통 속에 넣으실까, 이렇게 때려야만 변화 받을 수 있기 때문일까?"
 
"힘든 것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기대와 소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배려가 우리의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종교적 성취가 아닌, 아마존 영혼들의 구원과 회복이다. "아마존 검은강 지역에는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는 15개 미전도 부족이 남아있어요.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제게 기도제목입니다."

그는 최근 아마존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자아가 깨진 이야기를 담은 참회록 <가슴 찢는 회개>를 펴냈다. 김 선교사는 "이 참회록이 '주님 없이 주님의 일'을 하는 이들이 돌이키는데 작게나마 쓰임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허운석 선교사가 남긴 <내가 왕바리새인 입니다>,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를  통해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