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풍요로운 세상이 됐지만 계층 간 불평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데일리굿뉴스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한국의 자본주의 모델이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사회는 50년 사이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서울의 밤은 고층빌딩이 뿜어내는 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산업단지의 공장들은 힘차게 돌며 기계를 깎고 쇳물을 토해낸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경제를 이끌어가는 상위 몇 퍼센트와 나머지 노동자와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거대한 균열'이 벌어져 있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 씨는 홀로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2016년에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의 '어린' 노동자가 숨졌다.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로 위험한 현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안정된 미래와 급여를 보장받지 못했다. 자영업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집을 팔고 퇴직금에 은행융자를 끼고 문을 연 치킨집과 편의점은 3년 내 40퍼센트 가까이 문을 닫고 있다.
 
삶의 어느 순간에 가난 할수 있고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가난'의 상황이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풍요로운 세상이 됐지만 계층 간 불평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의 끝은 어디일까.
 
 ▲2001년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표되는 시장의 자기 조절 기능에 회의적이며, '간섭받지 않는 시장은 재앙'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데일리굿뉴스


불평등은 비효율적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그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을 일한다. 제대로 돌아가는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은 이런 노력을 기울인 이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온정을 손길을 내밀자는 주장이 아니다. 열심히 오래 일하는 사람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에 나와 있듯 스티글리츠는 사회에 만연한 제도화된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하고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낳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불평등의 원인을 '정치'에서 찾는다. 저자는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의 실패의 결과"라고 말한다. 그가 불평등의 책임을 정치 시스템으로 돌리는 이유는 오늘날 경제에서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장의 경찰관 노릇을 하며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결정한다. 또한 각종 제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고 부의 역학을 변화시킨다. 정부가 어떤 기능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불평등의 수준도 달라진다. 결국 모든 경제 문제의 핵심에는 '정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위 1퍼센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다.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시장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기구에 자신들의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을 책임자로 앉힌다. 정부의 '관료'들은 정부에서 나와 기업의 이익을 대신하는 '전관(前官)'으로 변신한다. 기업은 이들의 전문성이 아닌 이들이 가진 '정·관계 인맥'을 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는 상위 계층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시장의 규칙을 바꿨다. 그러면서 자신들(상위 1퍼센트)의 이익이 나머지 99퍼센트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관념'을 심었다. 낙수효과가 이런 관념 중 하나다.
 
 ▲스티글리츠는 "99퍼센트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없이는 '미래의 불평등'은 지금보다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데일리굿뉴스

 
'불평등의 대가' 막으려면?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통화 정책보다 재정 정책이, 긴축 정책보다 적극적인 재정 지출 정책이, 공급 중심 정책보다 수요 중심 정책이, 부유층을 보호하는 정책보다 중간 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돕는 정책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역설한다. 여기에 더해 상위 1퍼센트가 심각한 불평등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자신들의 운명이 99퍼센트의 운명과 같이하는 관계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99퍼센트도 '낙수효과'와 같은 1퍼센트가 심은 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깨닫게 된다면 '기회와 공평성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유지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오력'해도 변하지 않는 경제적 불평등과 그로인한 수많은 문제는 오늘날 전 세계적인 문제다. ‘99퍼센트’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없이는 ‘미래의 불평등’은 지금보다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심해지는 불평등은 ‘공동체 의식’을 훼손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지 모른다고 말한다. 1퍼센트를 위해 작동하는 ‘정치’가 아닌 99퍼센트를 위해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정부가 필요하다. ‘기회와 공평성’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유지되는 사회가 되지 못한다면 엄청난 양극화와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붕괴’라는 엄청난 ‘불평등의 대가’를 치를지 모른다.
 
 ▲<불평등의 대가>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조지프 스티글리츠,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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