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는 100년 전,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임시정부에 있다. 그리고 임시정부는 3·1운동을 직접적인 계기로 태동했다. 대한민국의 정신·사상적 기반이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을 기점으로 형성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당시 기독교가 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19년 당시 기독교인의 비율은 1.5%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3·1운동 도화선 된 민족자결주의, 기독교에 기반
 
양화진문화원(김성환 원장)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양화진 역사강좌'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열렸다. 2월 한 달 간 기억과 부활, 그리고 계승이란 주제로 매주 목요일에 진행되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명수 소장이 첫 번째 강사로 나섰다.
 
박명수 소장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이 땅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민주주의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세기 중반 서구의 민주주의를 설명한 중국의 해국도지가 들어오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서양의 정치제도를 단지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당시 백성들이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배우고 체험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미국 선교사들과 서재필, 안창호 등 기독교인 지도자들을 통해서였다고 박 소장은 전했다.
 
박 소장은 "무엇보다 한국 민주주의의 실질적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독립협회와 만국공동회의 창설과 활동 중심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며 " 당시 활약상을 펼쳤던 대표적인 기독교인에는 서재필과 윤치호, 안창호, 박용만 등이 있다"고 말했다.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역시 기독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윌슨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장로교 목사였으며, 본인 역시 장로교회의 장로였다. 박 소장은 "민족자결주의는 당시 떠오르기 시작한 사회주의 세력과의 대결구도에서 나온 서구 민주주의 정신에 토대를 둔다"며 "이를 명문화한 기미독립선언서는 한반도가 추구해야 할 독립이 봉건주의와 식민주의, 공산주의로부터의 독립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명수 소장은 한반도 민주주의의 출현은 기독교 유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데일리굿뉴스
 
임시정부 헌법 “대한민국, 하나님에 의해 건국”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탄생한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했다. 최초로 제정된 헌법은 제7조에서 '대한민국은 신(하나님)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되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당시 임시정부의 구성원들이 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음을 반증한다.
 
독립을 향한 길고 긴 투쟁 끝에 마침내 해방을 맞은 한반도는 다시금 이념 대립으로 들썩이기 시작한다. 일제가 떠나간 한반도 땅에 어떤 국가, 어떤 정부를 건설할 것인가를 놓고 격렬한 투쟁이 벌어진 것.
 
박 소장은 "결과적으로 남한에는 민주주의 정부가, 북한에는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당시 남한에선 기독교인들 외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공산주의보다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는 구한말 조선 땅을 밟은 선교사들을 통해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접했기 때문이다.
 
박명수 소장은 "미국 선교사들이 교회와 학교에서 가르친 민주주의가 한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각인이 됐다"며 "기독교인들 역시 공산 정권 하에서는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주공화국 설립에 적극 나섰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설립되는 데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그는 "민주주의의 도입부터 정착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부분을 찾기 힘들다"며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기여한 역할은 3·1운동 뿐 아니라 대한민국 형성에도 상당하다"고 평가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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