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 민족에게 큰 기념이 되는 해다. 바로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100년 전 1919년, 한국교회가 당시 3·1운동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만열 교수는 11일 서울 영동교회에서 '3·1운동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강연했다.ⓒ데일리굿뉴스

신앙고백과 함께 전개된 거족적 민족운동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배종석·정병오·정현구)은 11일 서울 영동교회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강연'을 개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이만열 교수(상지대 이사장, 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3·1운동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1919년 당시 기독교가 3·1운동에 기여한 역할을 △준비점화 단계 △만세운동의 지방화·전국화 △국가건립 단계 등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이 교수는 “3.1운동의 봉화를 든 것은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며 “만세운동 점화단계에서 본다면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다. 당시 3·1운동과 관련해 48명이 기소가 되고 처벌 받았는데 그 중 24명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평양, 진남포, 정주, 안주, 의주 등으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지도록 한 기독교의 역할이 통계결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3월 1일 첫날 서울 외 7곳이 대부분 기독교 중심이었고, 의주와 평양은 목사들이 주동했다. 천도교 측과 합작해 운동을 추진한 지역을 311개로 정리했을 때 그 중 기독교가 78지역, 양교 합작지역이 42개 지역"이라고 밝혔다.
 
또 "당시 한국인 인구가 1,600만 명 정도인 가운데 약 1.5%에 해당하는 21만 명 내외가 기독교 세력이었으며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외친 기독교 주동세력은 25~38%, 체포·투옥된 기독교인들은 17~22%의 수치를 나타낸다"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 기독교 인구가 1.3~1.5%에 불과했지만 적극적인 운동에서 20%를 상회했다"면서 "이를 비추어 볼 때 3.1운동과 한국교회와의 관련성이 깊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기독교가 이같이 민족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로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민족운동의 전통 △기독교계의 교단 조직화 △기독교신앙과 민족사랑을 일치하기 위한 노력 등이 꼽혔다.
 
구체적인 신앙과 민족사랑의 실천 사례에 대해 이 교수는 "3·1운동 만세시위가 한창일 때, 한국교회는 <독립단 통고문>을 작성해 배포했다"면서 "매일 3시 기도, 주일금식,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성경 읽기를 위한 말씀 본문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민족운동을 신앙 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것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믿음의 선조들이 신앙심에 기반해 보여준 민족적 일치운동은 오늘날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한국교회가 이어가야 할 역사적 정신으로 강조됐다.
 
이 교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하는 올해 한국교회는 무력이 아닌 맨손으로 조국의 완전자주통일독립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던 선진들의 신앙과 행동을 되돌아봐야 한다"며 “나아가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민족의 분단적 삶을 평화적으로 극복해 가는 데 힘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연 이후에는 '2019년 기윤실 회원총회'가 이어졌다. 지난해 기윤실 운동 내용과 결산을 보고하고 올해 사업계획안 및 운동 방향과 예산안 등을 확정했다.
 
기윤실은 올해 “약자를 위한 정의, 모두를 위한 공동선”이란 주제 아래 △자발적불편운동 △교회신뢰운동 △좋은사회운동 △바른가치운동 △청년운동 등 총 5가지 운동에 주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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