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나이에 글과 그림을 배워 전시회를 열었던 전남 순천 할머니들의 인생 일기가 책으로 묶여 나와 관심을 끈다. 전쟁 중 피란길의 외로움, 일본군에게 잡혀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슴 울리는 애틋한 이야기 덤덤하게 풀어내
 
"못 그려도 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절로 행복해집니다"
 
'순천 소녀시대'라 불리는 할머니 20명의 살맛 나는 인생 이야기를 담은 그림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에는 할머니들의 눈물과 웃음이 배어있다.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이 살아온 생을 모두 합하면 1600년이 넘는다. 이들의 삶을 모두 책에 담을 순 없지만, 책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겼다.
 ▲순천 할머니들이 펴낸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데일리굿뉴스

 
일본군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친구에 대한 그리움, 전쟁 중 피란길에 죽은 동생을 업고 온종일 걸었던 슬픈 기억, 글을 몰라 거리의 간판이 다 외국어처럼 느껴졌던 쓸쓸함 등 애틋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책에서는 삶의 풍파를 헤쳐 온 할머니들의 글 뿐 만 아니라 개성 넘치지만 따뜻한 그림까지 만나볼 수 있다. 뒤늦게 그린 그림에 재미를 붙여 수십, 수백 장을 그렸다. 모두 모으니 수천 장이 넘었고 실력도 깜짝 놀랄 정도로 늘었다.
 
지난해 서울 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고, 올해는 뉴욕과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등 미국 전시 계획까지 잡혀있다.
 
순천시 한글작문교실서 처음 글 배워
 
할머니들은 2016년부터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내 인생 그림일기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글과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평생 까막눈으로 살았던 할머니들은 연필을 잡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한다. 손이 떨려 선을 긋기도 힘들어 했고 '그림은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다'며 손사래 치고 한사코 펜 들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할머니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김순자씨는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들통날까 봐 불안에 떨고 흰 종이만 봐도 겁을 냈던 분들이었다"면서 "처음에는 글 공보다는 어르신들의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드는 데 더 많이 집중했다"고 전했다.
 
굳게 닫혔던 할머니들의 마음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열렸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열리니 한평생 묻어둔 가슴 속의 한이 쏟아져 나왔고, 이내 그 이야기들은 가슴 뭉클한 작품이 됐다.
 
올해 70세인 김명남 할머니는 "공부를 하니까 젊어지고 활달해지고 방송, 잡지에 나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진다"며 "지금 내 인생의 최고 행복"이라고 말했다.
 
김순자씨는 "누구나 무언가 한구석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고 숨기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인생 전체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배움이, 채움이 조금 늦더라도 어느 순간 눌려 있던 재능이 활짝 꽃피는 순간이 찾아온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울고 웃던 수많은 시간, 그 곁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내게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김정자 할머니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과 남편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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