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전셋값의 동반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들어 서울·수도권 주택시장에선 임차인이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거나 보증부월세(반전세)의 월세액을 내려 재계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세거래에 있어서도 세입자 우위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집주인이 제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경우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이 발생할 조짐마저 보인다.   
 
 ▲역전세난 위험이 커지면서 세입자와 집주인간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이 늘고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세입자-집주인 전세금 분쟁 확산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해 12월로 전세만기가 끝났는데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 6,000만 원을 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집주인이 은행 대출이 막혀 보증금을 돌려줄 여유가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하는 A씨는 곧바로 올해 1월 임대차 분쟁조정을 신청했고, 조정을 통해 늦어도 4월까지 보증금을 돌려받되 그때까지 연 10%의 지연이자를 받기로 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된 가운데 주택 공급 물량이 늘면서 전셋값이 떨어지자 제때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사를 가려고 해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이 묶이는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역전세난 위험이 커지면서 세입자와 집주인간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도 늘고 있다. 최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위원회에 총 2,515건의 분쟁 조정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71.6%(1,801건)이 전세 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분쟁인 것으로 집계됐다.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게 해달라는 조정신청이 10건 중 7건을 넘는 셈이다. 이는 유지·수선보수(201건)와 계약갱신 문제(143건), 손해배상(156건) 등 다른 분쟁 사례를 압도하는 수준으로, 3월 이후 봄철 이사 성수기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전세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 현상이 앞으로도 급증할 거란 전망이다.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 전국의 주택 전셋값은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보면, 2월 첫째 주 기준으로 서울 25개 구 가운데 2017년 2월 초보다 아파트 전셋값이 내린 곳은 강남(-1.71%)·서초(-6.96%)·송파(-3.22%) ·용산(-0.76%)·도봉(-0.57%)·노원구(-0.25%) 등 6개 지역이다. 이중 역전세난 우려가 보이는 곳은 서초·송파구 정도로 이들 강남권은 고가 아파트가 많고 전세가율(전셋값/집값)이 낮아 전세금 반환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반면 경기 지역을 비롯한 지방의 사정은 다르다. 경기 광명, 인천, 의정부, 인천을 제외한 상당수 도시의 아파트 전셋값 하락률은 10%대를 상회한다. 안산의 전세값은 2년 만에 무려 14.53% 하락했고 평택(-12.40%)·하남(-10.11%)·파주(-9.66%)·화성(-6.56%) 등도 큰 폭으로 내렸다. 이들 지역에선 당장 올 상반기 전세계약 만기로 인한 집주인들의 전세금 반환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과거와 달리 매매와 전셋값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어 지방을 중심으로 이른바 '깡통주택', '깡통전세' 문제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며 "수도권은 아직 주의보 수준이지만 물량이 많은 만큼 모니터링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제적 '역전세난 대책' 필요

역전세·깡통전세 우려가 확산되면서 주택 세입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집주인들 사이에서도 전세금 충당이 힘들어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적지 않다. 9·13대책에 따라 주택대출정책이 강화돼 대출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할 공산이 큰 까닭도 큰 우려로 작용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엔 다음 세입자를 찾을 때까지 대출이자와 중도상환 수수료를 좀 쓴다고 생각하고 일단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기존 세입자를 내보냈지만, 부동산 대책 이후 이런 선택지가 좁아졌다"며 "신용대출도 잘 안 나오다 보니 대출을 못해 발을 구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역전세 현상이 더 확산되기 전에 선제적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당분간 역전세난 우려가 큰 만큼 세입자 보호를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여력에 따라 미반환 위험의 편차가 클 것"이라며 "전셋값 하락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임차인 보호 차원에서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KB금융경영연구소 강민석 부동산연구팀장도 "전세금반환보증의 대상, 가입조건 등을 완화해 보증대상을 넓히고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주택은 보험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세입자의 위험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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