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진 여파가 저소득층에 집중영향을 끼치며 계층간 소득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공적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하위계층 소득을 떠받쳤지만 근로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분배 악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득 양극화 해소 정책에 역점을 두고 있는 현 정부로선 뼈아픈 실적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운반하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소득 수준이 하위 20%인 계층의 가구주 연령은 최근 15년 사이에 11.7세 높아진 것으로 파악된다.(사진제공=연합뉴스)

2003년 통계작성 이후 최악 기록
 
저소득층의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지난 2003년 통계작성 이래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고소득층 소득은 더 늘어 소득의 빈부격차가 크게 나빠졌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17.7% 감소한 데 비해 상위 20% 가구는 10.4% 증가해 양 집단의 격차가 5.47배에 달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5등분했을 때 가장 아래쪽에 있는 1분위 월평균 소득은 123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일해서 번 돈, 근로소득은 68만원에서 43만원으로 36%나 줄었고 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국가에서 받는 보조금 등 이전소득에 해당했다.

반면 최상위 소득층인 5분위 계층은 근로소득(14.2%)·사업소득(1.2%) 등 대부분 소득이 늘면서 10%를 넘는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이들 계층은 한달 평균 932만4,000원을 벌었다.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에는 일자리가 꼽히고 있다. 실제로 상위 20%인 5분위와 상위 40%인 4분위 가구는 평균 취업자 수를 각각 2.4%와 1.1% 늘렸다. 이에 반해 하위 20%인 1분위와 하위 40%인 2분위는 가구당 취업자 수가 20.9%와 7.6%로 감소했다. 가족 모두 무직자인 가구 비율도 43.6%에서 55.7%로 12%나 늘었다. 이 결과 소득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14.2%증가했지만 1분위 가구는 36.9%급감했다.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1분위 근로소득 급감은 취약한 한계일자리를 중심으로 상황이 악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4분기에 상용직은 증가했지만 (1분위 가구에 많은)임시직은 17만 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계층별로 소득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소득지표는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소득주도성장의 배신, '일자리 창출'이 답
 
계층간 소득격차 심화가 지표상에 드러나면서 이를 두고 '소득절망성장', '소득주도성장의 배신'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경제 주체의 소득을 높여 성장을 이끌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기대와 다른 성적표를 내면서 정책의 재검토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소득분배 격차는 지난해 일자리 쇼크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소득분배 참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작년 4분기 소득 격차의 주원인은 1분위 가구 근로소득이 36.8%나 줄어든 데 있다.

전문가들은 '분배 참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꼽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임시직 실업과 영세사업장 폐업률을 증가시켰고 이는 수익감소로 이어지며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펼치면서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활성화를 불러와 불평등이 개선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결과는 정반대로 증명된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반도체 계열과 같은 상황이 양호한 기업의 임금이 올라가는 등 정책 의도와는 다르게 안정적인 직장에서 고소득 임금을 받는 이들의 근로소득이 증가했다"며 "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보호하려는 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소득분배 지표가 악화일로에 놓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경영계는 "올해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에 지난해 인상효과와 맞물려 내년 이맘땐 더 절망적 통계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임시직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도 이번 조사에서 하위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이 크게 줄고 2분위에서 1분위로 떨어진 자영업자가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손보고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차등 지급하는 식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려면, 결국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하위 계층 가구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급선무"라며 "분배 개선의 시발점은 일자리다. 일자리를 만들려면 기업 투자를 유도해야 하고 경제체질을 바꾸기 위한 구조개혁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결과에 관해 정책 실패보다는 인구문제와 기저효과 등에서 원인을 찾았다. 인구 고령화 현상으로 소득 하위계층에 근로능력이 취약한 고령가구 비중(2017년 37.0%→2018년 42.0%)이 커졌고, 작년 4분기와 비교 대상이었던 2017년 4분기에 유독 1분위 근로소득이 20.7% 크게 올랐던 측면도 있었다고 밝혔다.

대책도 저소득층에 대한 각종 수당, 지원금 확대 등 기존 정책을 중심으로 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기초연금 인상과 노인 일자리 사업 확대, 실업급여 인상, 근로장려금(EITC) 확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사업을 착실히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