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촬영물 유포를 통한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SNS를 통해 퍼지는 불법 촬영물은 불특정 다수에게 다양한 경로로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그 피해 또한 걷잡을 수 없다. 더욱이 2·3차 피해로 이어지는 범죄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 (사진제공=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속출

최근 버닝썬 사건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및 유포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8개월간 디지털 성범죄 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 수는 2,379명, 피해 건수는 5,687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피해자 절반 이상이 불법촬영, 유포, 유포협박, 사이버 괴롭힘 등 유형별 중복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유형 중 유포피해가 2,267건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 촬영이 1,669건으로 뒤를 이었다.
 
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삭제 지원한 불법 촬영물 총 2만 8,879건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것이 60.02%로 관련 범죄의 처벌이 대부분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언제 또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불법 촬영물 유포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신상정보가 담겨있어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 되고 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삭제한 불법 촬영물 중 개인 정보 유출 피해가 확인된 것은 6,700건으로 23.2%에 달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또 다시 유포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사회의 불법 촬영물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로 인한 피해 사례에 비해 처벌 수위가 약하기 때문이다.
 
한국변호사회 통계자료에 의하면 몰카 범죄 가해자들의 1심 선고 유형으로 벌금형(68%)이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 17%, 징역 9%, 선고유예가 5%였다. 하지만 벌금형의 경우 액수는 많아야 300만 원에 불과해 단속의 의미가 상실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현아 박사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죄에 관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관련사건 담당 변호인들이 "벌금이 많아야 300만 원이니 굳이 합의하려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아는 사이라면 합의하지만, 지하철 같은 경우는 합의가 처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으니 합의를 안 한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이렇다보니 결국 불법 촬영 및 유포 범죄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몰카 범죄 가해자의 범행 횟수가 2회 이상인 경우는 53.83%로 재범률이 매우 높다. 또 몰카 범행을 5회 이상 저지른 상습범죄도 31.2%에 달했다.
 
이에 법조인들은 “처벌수위가 낮기 때문에 벌금형 안에서도 범죄 형태나 피해 정도가 다양할 수 있다”며 “범죄 기간과 피해감정, 재범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적할 방법 없는 단톡방 속 몰카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SNS 단체 대화방에 퍼지는 불법 촬영물은 누가 어떤 영상을 저장했는지, 다시 유포했는지 등을 추적하기는 어렵다. 결국 피해 신고가 접수돼도 삭제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불법 촬영물의 확산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최근 한 언론에서는 피해자 A씨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약 3,000건의 삭제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A씨의 영상이 누군가에게 저장됐다가 3,000번 이상 반복 올라간 것이다. 이같이 불법 촬영물 영상은 여러 사람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로드 돼 모니터링과 삭제 작업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찰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원본 제출을 요청하거나 압수수색을 통해 불법 촬영물을 획득할 수 있지만 문제의 영상물을 강제로 삭제할 근거는 없다"며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가 확인되면 그에 따른 처벌이 가능하지만 원본 영상 혹은 복사본은 삭제하라고 권고할 뿐"이라고 전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단체 채팅방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포는 누군가가 해당 영상이나 사진을 저장하고 공유하며 끊임없이 확산돼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며 "공유 받은 사람은 아예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얼마만큼 영상이 퍼졌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서울 중부경찰서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환승 구간계단에 불법촬영·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홍보물을 설치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처벌강화 시급

매년 수천 건, 최근에는 한 해 만 건 가까운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례가 있었지만 처벌 수위는 전반적으로 높지 않았다. 과거 정준영이 비슷한 일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았던 것처럼 죄질에 비해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불법 촬영물로 평생 고통 받는 피해자들을 위해 추가적인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사이버성폭력 대응센터는 "최초 불법 촬영물이 발견됐을 때 촬영 및 유포자가 문제의 영상을 강제로 삭제하도록 법적 근거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형사적 조치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도 다양하게 강구하고 있다"며 "최근 사건들로 인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새로운 근절 기법을 연구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사회 인식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관계자는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며 "성차별 인식 변화를 위해 성평등적 언어가 생활 속 성평등 의식을 높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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