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교회 조건회 목사 ⓒ데일리굿뉴스
유대인들의 율법과 윤리 철학 등에 대한 문헌인 <탈무드>에서는 남자의 일생을 일곱 단계로 나눠 설명합니다.

“한 살 때는 임금님과 같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주고 기분을 맞춰주고 떠받들어주니까./ 두 살 때는 돼지와 같다. 진흙탕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뒹굴고 뛰어놀 수 있으니까. /열 살 때는 새끼 양과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니까. /열여덟 살 때는 말과 같다. 다 성장해 힘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니까./ 결혼하고 나면 당나귀와 같아진다.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니까. /중년이 되면 개와 같아진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호의도 구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노년이 되면 원숭이와 같아진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 다시 어린아이같이 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과연 귀에 속속 박히는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인생 신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들마다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주는 신분증에는 우선 자신의 이름이 있고, 생년월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속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것이 고작 그것입니다. 엄격히 따져보면 그 전부가 다 소속에 관한 것뿐입니다. 어디가 고향이냐, 어떤 집안사람이냐,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느냐, 이렇듯 주로 소속에 의해서 나를 증명합니다. 그 이름 석 자에서마저도 한 글자는 자신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딴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의 소유나 학벌, 외모나 백그라운드에 의해 평가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음을 우리 모두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그와 같은 외형적인 요소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내 인생은 누가 만든 작품이냐, 나아가 누구의 것이냐, 누구의 소유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Who I am’(내가 누구냐) 이전에 ‘Whose I am’(내가 누구의 것이냐)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품’자가 들어가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품이요, 또 하나는 작품입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첫째 상품은 값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작품은 가치를 따라 삽니다. 둘째 상품은 팔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주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도 정말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존재됨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 가치기준에 따라 살아갑니다. 소위 돈에 따라 움직이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을 좀 더 고상한 말로 하면 ‘시장지향성인간’(market oriented person)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신을 지어주신 생명주인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작품으로 가치 있게 살아갑니다(Value-oriented person). 여러분은 상품으로 사십니까? 아니면 작품으로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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