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과 부활절의 사회적 의미
 
 ▲정재영 교수

세계의 교회들이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에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부활절 날짜는 해마다 변하고 날짜를 계산하기도 간단치 않다.
 
부활절은 매년 춘분이 지난 첫 만월 직후의 일요일인데 이렇게 날짜가 정해진 유래는 이렇다. 유대 전통 달력과 로마의 태양력이 달라서 교회마다 서로 다른 부활절을 지키다가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부활절 논쟁에서 로마법에 따라 유월절이 봄의 축제이므로 봄의 시작인 춘분이 지나고 유월절 보름이 지난 일요일로 정한 이후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부활절 날짜에는 천문학, 물리학적 날짜보다 성서적 전통과 신학적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다. 이렇게 부활절이 정해짐에 따라 마찬가지로 성서적 전통과 예수님의 자취에 따라 40일의 정화와 준비 기간인 사순절이 정해지고 부활 뒤에 예수 승천과 성령강림절이 정해졌다.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고정할 수 없는 기독교 특유의 날짜들이다.
 
사순절과 부활절 날짜에는 앞에서 말한 신학적 의미와 함께 당시에 큰 세력을 형성했던 두 교회가 합의를 이루었다는 사회적 의미도 담겨 있다. 유대 전통을 따르던 동방교회와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가 하나의 부활절 날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성서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부활절을 제각각 드리지 않고 한 날짜로 정해서 지키기로 마음을 모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당시 사회는 종교가 지배력을 행사하던 매우 종교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더라도 부활절은 단순히 종교 행사가 아니라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성대하게 치러진 전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축일이자 행사였던 데 반해 오늘날 부활절은 매우 좁은 의미의 종교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교계 안에서조차 부활절은 매우 개인적인 신앙 회복의 의미가 강하다.
 
사순절은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사순절의 의미가 많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특히 개혁주의를 표방할수록 예전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순절의 의미가 많이 약화되고 있다. 개혁주의에서는 어떠한 형식과 종교적 상징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미 자체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부활절의 의미를 깊이 새기자면 마찬가지로 사순절의 의미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 가운데 있던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룬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을 묵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순절과 부활절 정신의 사회적 실천

역사적으로 10세기 이전에는 엄격한 금식과 절제된 식사로 사순절을 지켰지만, 점차 금식은 완화되고 말씀묵상과 기도 등 경건의 훈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에 금식은 주로 건강과 미용의 목적으로 여성에 의해 주도되지만, 인류 역사에서 금식은 대개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단식으로 남성에 의해 주도되었고 사회적 의미가 중요하였다.
 
단식 행위는 행위자의 확실한 자기 의지에서 비롯되며, 자신의 죽음을 건 고행 또는 저항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사순절 금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에서의 40일 단식을 되새기고 여기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고행을 자초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탐욕과 무절제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가난에 힘겨워하는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활절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죄에 빠진 개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로 부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는 이 세상의 수많은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셨고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개인만 구원하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의 회복과 이 땅의 모든 억눌린 자들이 태초에 지음 받은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단순히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구원의 소식을 알리고자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그분이 하신 사역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고 행하는 것이다.
 
5년 전 부활절을 즈음하여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이후 해마다 부활절과 세월호 참사 애도일이 겹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애서 피하고 의미를 축소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서 교회가 연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빚고 있다. 3백 명이 넘는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었는데도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는 이념으로 갈라져서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지도 못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부활절 의미조차도 매우 좁은 종교적 차원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념과 사상을 넘어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 한 마음으로 헌신하고 결단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 사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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