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혹은 '비정상' 등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장애인을 장애인으로만 바라봤다. 편협한 시선 속에 장애인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로 각인됐다. 이런 세상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장애를 가진 몸으로 환경을 보호하고 소외된 이웃까지 돕는 장애인이 있다. 1년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작은 손수레 하나를 끌고 거리에 나서는 그는 지역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지난 17일 강원도 원주 명륜동의 한 거리에서 어김없이 손수레를 끌고 가는 이금자(65) 씨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금자 씨의 젊은 시절 모습 ⓒ데일리굿뉴스
작은 금자씨가 쏘아올린 희망이라는 공
 

"종이컵 줍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멈추지 않고 했어요. 몸은 고달팠지만 제 삶의 낙이고 희망이었기에 종이컵 모으기를 멈출 수 없었어요. 저는 종이컵을 그냥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모았어요. 제가 몸은 비록 이렇지만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금자 씨는 선천적 왜소증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키 101cm 몸무게 32kg. 남들과 조금 다른 신체를 가졌을 뿐인데 세상은 금자 씨에게 너무 가혹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온갖 놀림과 설움을 받고 세상으로부터 숨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저희 형제 모두 남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어요. 얼마 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들마저 연락이 끊겼죠. 천애고아가 돼서 내 의향도 없이 이 집 저 집 수도 없이 떠돌아다녔어요. 삶이 너무 힘들어서 나를 몇 번이나 버렸어요.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결국 후유증만 남아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어요."
 
죽는 것조차 마음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결국 그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면 최소한 살아나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마음의 담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갔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힘닿는 데까지 도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원주시 새마을회에서 '종이컵 줍기 운동'에 동참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여기저기서 일 돕는 모습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이 몸을 끌고 할 자신이 없어서 1년이나 안 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동장님이 3년만 해보라고 계속 설득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종이컵 줍기 운동'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담배꽁초, 침 등 온갖 쓰레기가 가득 차 지저분한 데다 손도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니었다. 새마을회원들도 다들 오래 못 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자 씨를 힘들게 한 건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였다.
 
"어느 날 혼자서 종이컵을 수거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뒤에서 '꼴값 떨고 있네', '지가 뭘 한다고 저길 쫓아다니냐'며 흉보더라고요. 그런 소리 듣는데 속이 상하죠. 내가 몸이 이러니 배움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스스로 싸워서 이겨야겠더라고요. 더 열심히 수거해서 나같이 배움이 부족해 고생하는 학생들을 돕자고 마음먹었죠."
 
원주 새마을회와 함께 하는 폐종이컵 수거는 자원재활용운동으로 시작해 장학금 기부로 확산됐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금자 씨의 폐종이컵 수거를 통해 만들어진 장학금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수많은 학생이 꿈과 희망을 갖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됐다.
 
 ▲이금자 씨는 매일 동네 곳곳을 다니며 폐종이컵을 수거해 만든 장학금을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부하고 있다.ⓒ데일리굿뉴스

금자 씨는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행해보니 폐종이컵이 많기는 정말 많았다. 금자 씨는 "불과 하루 전날 동네 곳곳을 다니며 폐종이컵를 수거했지만, 또다시 쌓이는 종이컵을 보니 어제 수거한 것이 무색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몇 시간을 돌았을까. 금자 씨의 수레엔 어느새 그의 키와 맞먹은 자루가 실렸다.
 
금자 씨가 일주일 동안 수거하는 폐종이컵의 양은 최소 45kg. 우리가 흔히 쓰는 종이컵 한 개의 무게가 보통 3.5g이라고 하니, 어림잡아도 종이컵 1만 2,000개 이상을 수거해야 한다. 금자 씨가 1년간 수거하는 폐종이컵은 보통 5t, 종이컵 30만 개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렇게 종일 수거한 폐종이컵은 모아서 고물상 등에 가져다준다. 예전엔 휴지로 맞교환하거나 근처 재활용 공장에서 10kg당 2,400원 정도에 매입했다고 한다. 공장이 이전한 후론 이 금액마저도 받지 못하지만, 금자 씨는 걱정이 없단다. 각종 단체에서 받은 상금이나 강의를 통해 얻은 수익금 등을 보태 전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자 씨는 기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무조건적인 지원에 쏠리지 않고,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이끌고 인도해주는 것에 집중돼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장애인들이라고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아이한테 맞는 아이숟가락이 있고 어른에게 맞는 어른숟가락이 있듯이 우리도 그래요. 육체적으로 도와줄 장애인이 있고, 정신적으로 도와줄 장애인이 있어요. 정작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이런 걸 판단해서 도와주고, 개개인에게 맞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이끌어줬으면 좋겠어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요."
 
 ▲비록 장애를 갖고 있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이금자 씨의 모습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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