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정원장(왼쪽)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오른쪽)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회동을 마친 뒤 식당 밖으로 나오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비공개 만찬 회동을 가진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인터넷 매체 '더팩트'는 서 원장과 양 원장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 강남구 한 한정식 식당에서 만나 4시간 30분 가까이 회동을 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양 원장이 회동을 마치고 귀가할 때 식당 주인이 모범택시 비용을 대신 지불했으며, 그가 '양 원장이 아무 직책이 없는 줄 알고 돈을 내줬다'고 말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양 원장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서 원장께 모처럼 문자로 귀국 인사를 드렸고, 서 원장께서 원래 잡혀 있던, 저도 잘 아는 일행과의 모임에 같이 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었다"고 회동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양 원장은 그러나 회동 성격에 대해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택시비 대납에 관해선 "제 식사비는 제가 냈다. 현금 15만원을 식당 사장님께 미리 드렸고, 그중 5만원을 택시기사 분에게 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종일 공방이 오갔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지인 간의 사적인 만남'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으나,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은 '정보기관 수장과 여당 싱크탱크 수장의 부적절한 만남'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서 원장과 양 원장의 만남을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기사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아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라면'이라고 많은 가정을 하면서 아무 팩트도 없이 부적절하다고 한다"며 "공세를 하려면 '라면 공세' 말고 '팩트 공세'를 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서 원장이 간만에 귀국한 양 원장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난 것이 무슨 문제가 있나"라며 "당 대표나 사무총장도 아니고 민주연구원장을 '여당 전략 사령탑'이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당은 서 원장과 양 원장의 만남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고, 국정원이 내년 총선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면서도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회동이) 만약 총선과 관련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서 원장은 어떤 논의를 했는지 밝히고 부적절한 논란을 빚은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양 원장도 총선을 앞두고 행여 국정원을 총선의 선대기구 중 하나로 생각했다면, 당장 그 생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국회 정보위원회 소집 필요성을 거론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비밀회동은 정치개입 의혹을 살 소지가 충분하다. 과거 국정원의 총선 개입이 떠오르는 그림"이라며 "즉시 국회 정보위원회를 개최해 사실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두 사람의 만남이 '촛불 정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평화당 홍성문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공했다"며 "총선승리가 촛불혁명이라고 오만하게 떠들더니 결국 국정을 농단했던 지난 정부와 다른 게 없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도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독대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만남이자 촛불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 (인사가) 만남에 함께한 것도 아닌데 왜 청와대가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지 오히려 궁금하다"며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의 입장을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당 모임에 현직 청와대 관계자는 없었나'라는 질문에는 "제가 확인한 바로는 없다"고 답했으나, 민정수석실 등을 통한 공식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UPI 통신의 국내 매체라고 소개한 'UPI뉴스'는 서 원장이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예방해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한 후 도쿄에서 양 원장과 독대한 적도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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