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목사 ⓒ데일리굿뉴스
“새벽예배는 비인권적입니다. 시정하기 바랍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린 결정이다. 한 신학대학 학생이 ‘새벽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기숙사에서 퇴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부당하다며 인권위에 신고한 것에 대한 인권위의 답변이 ‘비인권적’이라는 결론이다.

학교의 독특성과 한국교회의 소중한 유산인 새벽예배를 인권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점점 증가 추세다. 이번에 부모의 훈육에 대한 민법 개정안 역시 성경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물론 디테일한 면에서 보완한다지만 그 기준은 고무줄일 수밖에 없다.

이제 낙태법, 동성혼 등 점점 교회와 충돌하는 지점이 많아지면 국가는 법으로 규정할 것이다. 인권이라는 휴머니티는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가치가 점점 권력을 가지면 하나님과 싸우게 된다. 바로 그러한 지점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기총의 적극적인 정치개입이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이들을 부추기고 있음을 본다. 성경의 가치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교회 참여’와 ‘교회의 정치 참여’는 심각한 분쟁을 일으킨다. 국가가 신의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 국가는 관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질서가 무너지지 않도록 각 단체의 특성에 맞도록 관리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그런데 국가가 자치 영역에 침투해 고유의 가치를 ‘법’이라는 무기로 관리하면 반드시 저항이 생긴다.

지금은 진보적인 생각이 강해 인권이라는 힘이 대단한 영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권은 하나님이 아니다. 인권은 가치가 소중하지만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면 안 된다. 그것은 우상숭배가 된다. 하나님이 있어야 할 곳에 다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다.

우리 시대는 바울이 말하는 말세의 고통 하는 시대의 첫 번째 특징 잘 보여준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3:2). 사랑의 대상이 자신이고 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 사랑이다. 자기가 우선이다. 각종 대중매체는 ‘혼밥족’에 대해 연일 보도한다. 나 혼자 사는 것이 강세를 보인다. ‘비혼’도 늘고 있다. 여기에 ‘결혼’과 ‘가장’이라는 제도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의 열매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우상숭배다. 참된 인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음에 대한 자각과 감사다. 하나님의 부여하신 소명과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인권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시대는 사람이 곧 하나님이 된다.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신이라며 자신을 섬길 것을 주장했다.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이처럼 인권이 신의 위치에서 인권을 경배하지 않으면 사회 공동체에서 손해를 보게 하고 경제적 활동에 제약과,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로 만들고, 조롱을 한다면 도미티안과 다를 것이 없다. 인권이 중요하지만 언제나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정말로 지혜와 순결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회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치 권력화 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교회는 정치집단이 아니다. 국가의 불의에 대해 저항할 수 있지만 국가 자체의 부정이나, 국가의 정치에 교회가 관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더구나 강단이 정치 선동의 장이 되는 것은 결코 안 된다.

강단은 오직 복음이 증거 되는 곳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국가의 교회 참여, 교회의 정치 참여라는 대치가 형성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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