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의 거목 '이희호 여사' 소천, 파란만장했던 삶

최상경 기자(cs_kyoung@goodtv.co.kr)

등록일:2019-06-11 11: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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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남편의 고난 가득한 정치 역정을 함께했고, 민주화를 향한 신념이 숱한 정치 탄압으로 곡절을 겪을 때마다 흔들리지 않게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영부인으로서의 삶 못지 않게 여성운동가, 민주화운동가의 삶에서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해제에 따른 구속자석방과 아울러 당국의 '보호'에서 풀려난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97세 일기로 영면에 들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10일 임종 당시 이희호 여사의 병실에는 성경 시편 23편이 울려 퍼졌다. 시편 23편은 이 여사가 평소 좋아하던 성경구절이었다. 

이 여사의 임종을 지킨 차남 김홍업 전 의원과 삼남 김홍걸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 등 가족과 동교동계 측근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말씀과 찬송을 따라 부르면서 아주 편안하게 가셨다"며 임종 상황을 전했다.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힌 이 여사의 생의 여정은 이 같이 하나님의 평안함 가운데 끝이 났다.   
    
'여성운동가, 퍼스트레이디, 민주화운동가' 이희호 여사는 어느 한가지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으로서 사회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크게 힘썼다.
 
1922년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신여성이었다.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한 이후 미국 램버스대와 스카렛대에서 유학했다. 남녀 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시대에서는 찾기 드문 엘리트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 여사는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1958년 귀국한 그는 대한YWCA 총무를 맡으며 여성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혼인신고를 합시다',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맙시다'라는 구호를 만들어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여성운동에 나섰다. 여성문제연구회 회장을 맡아 남녀 차별적 법 조항을 고치기 위한 활동에 힘썼고, 여러 여성단체가 모여 출범한 '여성단체협의회' 조직화에도 앞장섰다.
 
DJ의 영원한 정치적 동지, 고난과 기쁨 '동행'
 
 ▲1982년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 쓴 친필편지.

여성운동에 매진하던 이 여사의 삶은 1962년 김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의 인생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현대사의 거친 길을 함께 걷게 된 것이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 일선에 나설 때 정신적 지주로서 그를 지지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투옥과 연금, 타국에서의 망명 생활을 할 때도 김 전 대통령의 곁에서 힘을 불어넣는 조언을 부단히 건넸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연금 기간 도청을 우려해 중요한 대화를 필담으로 주고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김 전 대통령의 수감 시절, 두 사람이 주고받은 ‘옥중편지’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라고 평가 받는다. 편지에는 남편을 걱정하는 심정뿐 아니라 국내외 정세 등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르고 죽음 앞에 설 때마다 전 세계 유력 인사들에게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국제사회를 향해 구명 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97년 네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 여사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이 여사는 역대 영부인 중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영부인으로 꼽힌다. 그는 7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홀로된 후에도 남북 화해를 위해 남편이 걸었던 길을 이어갔다.
 
2009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남편의 유지를 국민들에게 전한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꼭 10년 만에 이희호 여사는 영면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행동하는 양심'으로 현대사의 거친 길을 걸어온 그의 삶 자체는 모두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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