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활동가들이 작년 10월 31일 오후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전날 대법원 배상 판결 에 따른 입장을 발표했다.ⓒ데일리굿뉴스

한, 피해자 개인 배상 청구 정당
일, 청구권 협정 위반 조약 파기


“한국이 일방적으로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고 국교 정상화의 기반인 국제 조약을 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한 뒤 처음으로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에 대한 무역 제재가 과거사와 관계없다며 표리부동한 태도로 일관하던 일본이 결국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당시 신일본제철(現 일본제철)의 강제징용에 대해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일본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모든 청구는 해결됐다’는 일본의 기존 주장과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는 정당하다 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다.

피해자 개인과 기업의 소송을 두고 일본 정부가 열을 내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까지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1965년 한일 양국이 맺은 기본조약과 협정들 중 ‘청구권 협정’을 두고 양국의 입장차가 극명히 갈린다.

‘한일 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을 보면, 제1조 1항에 ‘일본이 한국에 무상 3억, 유상 2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다. 제2조 1항에서는 ‘그로 인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1961년 5월 한일 청구권 협정 관련 회의 의사록’을 추가해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일본 측이 ‘개인의 배상 방법’을 묻자 한국 측이 ‘국가 대 국가로 청구해 개인은 국내에서 조치한다’고 답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은 물론 국내서도 대법원 판결이 정당치 않다는 주장이 다수 나오고 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나라면 2012년 대법원이 파기환송하기 전의 1·2심 판단(원고 패소)대로 했을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법리를 남용 했으며 법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대법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정당한지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신우정 청주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 위반으로 피해자 개인이 직접 상대방 국가나 법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개인의 동의 없이는 국가가 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마음대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협상 당시 국내 피해자들의 신상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4년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법’ 이 시행됐지만 1인당 30만 원, 그것도 피해자 중 사망자 8,500여 명에게만 제한됐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인 백종국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한일 무역전쟁의 배경을 진단하며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정당하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기윤실 웹진 ‘좋은나무’를 통해 2007년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에 제기한 소송에서 판결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예를 들었다.

백 교수는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국 가 간의 합의에 의해 외교보호권은 소멸될 수 있지만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며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는 판결을 일본 법원이 내릴 수 없었고 이는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 기업이 끼친 개인적 피해 보상에 대한 주장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청구권 협정의 정확한 명칭은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일본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이다. 전쟁에 대한 피해를 한국에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협력과 원조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은 적법한 비준 절차를 무시하고 일제 강압 속에 진행됐다. 국제법상으로도 무효인 불법조약이다. 하지만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은 그동안 사과는커녕 문서로 한국을 기만했던 일본의 술수를 깨뜨리는 한 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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