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 시대를 맞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 이하를 기록한 건 1965년 관련 통계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올 들어 7개월 연속 0%대 상승률을 보이다 결국 유례없는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늪에 빠져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로 지금껏 가장 낮은 0.0%를 기록했다. 소수점 자릿수를 늘려보면 -0.038%로 첫 마이너스를 찍었다. 지난해와 달리 양호한 기상여건 덕에 농·축·수산물 가격은 하락하고 국제유가도 내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는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일본형 장기불황 예고일 수도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작년 8월(104.85) 대비 0.0% 상승했다. 그러나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보면 전년대비 -0.038%로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다.
 
마이너스 물가는 농축산물과 국제유가 하락 속에 어느 정도 예견된 바였다.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농산물값이 치솟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날씨가 좋아 수확이 크게 늘었다. 그러면서 지난달 농축수산물값은 1년 전보다 7.3% 하락해 전체 물가를 0.59%포인트 끌어내렸다. 국제유가 역시 하락하면서 석유류 가격도 6.6% 내렸다. 정부는 여기에 "건강보험과 무상급식, 유류세 인하 조치 등 복지정책 확대도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불황형 물가 하락'의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많다. 민간소비가 부진하고 기업투자가 위축되면서 제품·서비스 수요를 감소시키고 이것이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장기화되는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가가 낮다는 건 서민 입장에선 우선 반가운 일이지만 지나친 저물가는 오히려 경기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기업·개인이 물가 하락을 예상해 지출을 늦추고 이것이 소비 감소와 재고 증가를 불러 생산·투자·고용 등 경제 전반이 침체에 빠지게 된다.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장기불황을 겪어온 일본 사례가 디플레이션(Deflation)의 공포를 보여준다.
 
'마이너스 물가' 상황은 일시적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전문가 사이에서는 한국 경제가 이미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의 기술적인 정의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며 "경기가 나쁜 가운데 GDP 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고 소비자물가까지 하락했다면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무역분쟁 여파로 세계경제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수출규제 이슈 등 대내외 경제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하반기 경제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디플레이션 징후가 더 짙어지기 전에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현재로선 재정 확장, 금리 인하 등 수요 진작 대책은 물론 정책기조 변화를 통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분기 GDP 잠정치가 하향 조정되면서 올해 성장률 2% 달성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자물가 하락도 시장에선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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