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4일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란 점에서 명절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나 팍팍한 현실 속에 이러한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짧은 추석 연휴 기간, 무얼 하며 보낼지 고민이라면 이번 만큼은 가족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추석 연휴 기간 중 가족과 즐기기 좋을 만한 영화 3편을 소개한다.
 
 ▲우리집(2019)

'우리들'에 이은 <우리집>
 
2016년 데뷔작 '우리들'로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전 세계 30개 영화제를 휩쓴 윤가은 감독이 4년만에 신작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집'은 나와 너, 가족을 지키고 싶은 동네 삼총사의 우정과 용기를 그린 작품이다. 전작 '우리들'에 이어 '우리'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번에도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번 신작은 특히 아이들의 세계를 다사롭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윤 감독 세계의 확장편에 속한다. 모두가 가슴에 품고 있을 '가족'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색채와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전작이 소녀들의 관계의 초점을 맞췄다면 신작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가족 문제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영화는 허구한 날 싸우기만 하는 부모님이 고민인 '하나'와 잦은 이사 때문에 힘든 유미-유진 자매가 '집'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험을 그린다. 집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집을 만들어가는 소녀들의 행보를 격려하게 되는 영화다.
 
집은 있지만 가족들 사이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가족, 화목하고 따스하지만 살 집이 사라질 불안 앞에 놓인 가정. 영화 속 아이들의 집은 각기 다른 문제에 처해있다. 문제와 상황이 다른 만큼, 서로가 그리는 이상적인 집의 모습도 다르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이 그리는 집을 통해 자연스레 가족과 집에 대한 의미를 곱씹게 된다.
 
지난 8월 말 개봉한 영화는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영화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 다양성 영화흥행의 포문을 열고 있다. 작지만 강한 힘을 보여주며 개봉 열흘 만에 3만 관객을 동원한 '우리집'은 현재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코믹과 정극 오가는 힐링 히어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가슴 벅찬 반전과 따뜻한 감동으로 온 가족에게 '힘'을 전해줄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이계벽 감독)'는 '좀 모자라는' 아버지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어린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루 아침에 '딸' 벼락을 맞은 아버지 철수(차승원)가 자신의 미스터리한 정체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반전 코미디다.
 
영화는 11일 개봉 전부터 '차승원표 코미디', '원조 코미디 맛집', '믿고 웃는' 등의 문구가 붙을 만큼 맛깔스런 웃음판을 깔아준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저 단순 코미디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일에 쌓였던 철수의 과거를 거슬러 가면 2003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맞닿는다. 그 때의 기억을 소환해 한 아버지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비극을 보여주며 아물지 않은 시대적 아픔을 돌이켜 보게 만든다.
 
영화는 '초반 웃음, 후반 감동'이라는 한국영화의 전형적인 흥행 공식을 따른다. 그렇기에 추석 연휴 가족끼리 다 같이 보기에 무난한 작품이다. 다만 비극적 참사와 코미디의 접목을 불편해 하는 관객들도 있을 수 있다.

과거에서 찾아낸 현재의 의미 <벌새>
 

전 세계 25관왕을 기록한 독립영화 '벌새(김보라 감독)'의 흥행 조짐이 심상치 않다. 개봉 8일 만에 3만 관객을 넘어선데 이어 4만 관객을 돌파하며 개봉 3주차 장기흥행 레이스를 예고한 '벌새'는 한국독립영화의 저력을 자신 있게 뽐내고 있다.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벌새'는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어 화제가 됐다. 1994년 배경으로 1초에 90번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사랑 받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14살 소녀 은희의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특히나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한 소녀의 일상을 통해 삶의 보편성을 담담히 전했다는 평이 많다. 사랑 받고 싶은 열다섯 소녀의 여름과 가을,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그 순간을 아주 섬세하게 담아냈다.
 
서사를 이끄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데도 은희를 바라보는 관객은 내내 안타깝고 불안하고 가끔은 미소를 띠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 138분이라는 꽤 긴 러닝타임을 가득 메우는 건, 이처럼 격정적으로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그래서 오히려 여타 작품보다 더 역동적이게 느껴진다. 
 
한 소녀, 즉 누군가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 '벌새'는 객석에 앉은 관객 모두의 품으로 날아드는 영화다. 여기에 힘이 있다. 1994년 은희가 마주한 세계는 누군가가 지나왔던 시절이자 풍경이다. 누군가가 지나왔던 세계를 만나며 우리는 어제를 살피고 오늘을 짚게 된다. 가장 본질적인 세계를 그리면서 현재의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벌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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