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좌절에 빠지거나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의 가시밭길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어진 고난의 길을 헤쳐 나가는 사례들은 은혜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별기획 '복음이 희망이다'에서는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가슴 따뜻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꽃제비', '탈북자', '장애인' 등의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대한민국 장애인아이스하키(ice sledge hockey) 국가대표 최광혁(32·강원도청). 생사의 갈림길을 넘고 희망을 보여준 그의 인생 스토리는 2018평창패럴림픽 폐막 직후인 지난해 3월 데일리굿뉴스와 GOODTV 뉴스를 통해 보도되며 묵직한 울림을 줬다. 이제는 이름 앞에 '불굴의 장애인아이스하키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붙은 최광혁. 그를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 최광혁 ⓒ데일리굿뉴스
 
평창패럴림픽에 따른 영광과 부담
 
지난 5월 초, 체코의 오스트라바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대한민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세계선수권 동메달 결정전에서 울린 승전보였다. 대표팀은 이날 값진 동메달을 획득하며 3년 연속 '세계 TOP 3'를 달성했다.
 
체코에서 금의환향한 영광의 주인공 중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동메달 획득의 숨은 주역, 최광혁이었다. 그는 개최국 체코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종경(46·강원도청)의 네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대표팀 승리에 쐐기를 박는 데 일조했다.
 
최광혁과의 두 번째 만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됐다. 현재 강원도에서 합숙하며 훈련에 매진 중인 그는 10월까지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었다. 인터뷰는 세계선수권이 끝난 후 5개월여 만에 이뤄졌다. 역시나 세계선수권 이야기로 시작됐다.
 
"평창 이후 첫 대회가 이번 세계선수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많았어요. 은퇴 등 여러 이유로 선수 구성에 변화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올림픽 때 메달권에 있었는데, 저조한 성적이 나오면 안 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었죠."
 
그러나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선수들은 훈련에 매진하며 호흡을 맞춰나갔다. 각고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공식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최광혁은 "물론 평창패럴림픽과 메달의 의미는 다르지만, 동메달과 함께 순위를 지켰다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광혁에게 평창패럴림픽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동메달은 값진 영광인 동시에 버텨내야 할 무게였다. 매사 조심성이 많아졌고,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감이 뒤따랐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무엇보다 평창패럴림픽 직후 쏟아진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는 그에게 부담을 안겼다.
 
"사실 인터뷰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희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장애인 아이스하키에 관심을 두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나라도 더 알리기 위해 나선 거예요. 그런데 제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적인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보도되더군요."
 
그러나 대표팀 후원 행사에 참석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그런 고난을 이겨내고 대단하다"라거나 "작은 일에도 불만이 생기고 마음이 어려웠는데 너무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비로소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도시락 나눔 봉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최광혁은 합숙에 들어오기 전까지 1년가량 비영리단체 '유니시드'와 함께 서울역 노숙인과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300여 개를 전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에 모여서 직접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에 담아 전해드리고 있다"며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 있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 최광혁 ⓒ데일리굿뉴스

희망 전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 끼치고파
 
최근 탈북 여성이 장애를 가진 어린 아들과 아사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탈북자 출신 최광혁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탈북자나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씁쓸함을 느꼈다. 무조건 편견으로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차별이 여전히 만연하다고도 지적했다.
 
"물론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나냐', '잘살아 보겠다고 왔으면 잘 살지, 왜 죽고 난리냐', '그럴 거면 한국에 오지 말지, 애는 무슨 죄냐' 등 댓글이 많았어요. 그걸 마주했을 때 제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과거보다 조금씩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는 최광혁. 그는 "제가 탈북해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봤다"며 "그때와 비교하면 희망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늘도 희망을 향해 달린다는 최광혁. 그는 최근 탈북자 출신 장애인들이 취미로 활동할 수 있도록 아이스하키팀을 결성하고, 더 나아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또 학부 전공을 살려 최대한 저렴하고 내구성 좋은 튼튼한 의족을 만들어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도 전했다. 그렇다면 그가 밝힌 최종 꿈은 무엇일까.
 
"여전히 신앙의 기복이 있고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해외로 파송되는 많은 선교사와 각지에서 좋은 일을 하는 크리스천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들처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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