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국내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공식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내며 '저물가 경고등'이 켜진 것. 그동안 이 같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비춰볼 때, 한국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늪에 빠져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내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집계됐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채소를 고르는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디플레 왕국' 일본보다 심각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일 통계청의 '소비자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2015년=100)로 1년 전보다 0.4% 하락했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공식적으로는 보합세였지만,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만 공식 통계로 인정하는 국제 관행을 걷어내면 -0.038%로 마이너스 물가다. 사실상 두 달 연속 마이너스인 셈이다.
 
이렇듯 저물가 현상이 지속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1%대에 머물 것이란 예측이 유력해지면서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자산시장 불안 등의 충격으로 총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에 악영향이 증폭된다. 기업·개인이 물가 하락을 예상해 지출을 늦추고 이것이 소비 감소와 재고 증가를 불러 생산·투자·고용 등 경제 전반이 동시에 가라앉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장기·복합불황을 겪었던 일본 사례가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반증한다.
 
'마이너스 물가' 상황은 일시적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경제가 이미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디플레이션이라면 일본처럼 물가가 절반 이상의 품목에서 장기간 내리면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의 하락이 동반하는 게 통상적인 징후라 말한다. 일본의 경우 자산 가격 폭락이 디플레이션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국내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김용범 기재부 차관은 "일본의 디플레이션 기간에는 조사대상 품목의 60%가량이나 가격이 떨어졌지만 우리는 물가하락 품목이 20~30%에 불과하다"며 "공급 측면에서의 일시적 요인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유독 낮은 점에 우려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보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부터 급락한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올 1월부터 9개월 연속 1% 이하를 유지하며 저물가 장기화 조짐마저 보였다. 이 때문에 '저물가 현상'을 농축수산물과 국제유가의 하락 등 일시적인 요인으로만 분석하는 정부 시각은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로선 정책 기조 변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이 공공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의도와 달리 충격으로 작용해 경기 부진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노동시장 경직성을 초래했다. 정책의 직접적 개입 대신 규제완화와 민간투자 활성화 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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