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더리 나게 병적인 비디오게임에 매달리거나 병적인 영화를 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실제로 깊이 병들어 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대를 낳았다."

학교 폭력은 물론 도박, 성매매 등 청소년 일탈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청소년 폭력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병들게 만들었을까.

'살인의 심리학' 저자이자 살해학의 선구자 데이브 그로스먼은 신작 '살인세대'에서 전 세계 빈발하는 10대들의 대량 범죄 원인으로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지목한다. 23년의 군 경력을 지닌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는 다양한 범죄 통계, 사회·문화 연구, 뇌 과학 결과를 바탕으로 게임과 공격성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 새로운 불씨를 지핀다.
 
 ▲최근 청소년들의 일탈 소식이 지속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살인·폭력 부르는 비디오게임

대형 총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총기규제'가 먼저 거론되던 미국 내 사회 분위기는 최근 달라졌다. 문제는 총이 아니라 폭력적인 게임이라는 주장이 새로운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지시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총기 참사가 터질 때마다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위험성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 2013년 여론조사 업체 해리스폴이 미국 성인 2,28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과반수가 넘는 58%가 게임의 폭력성이 청소년의 폭력적 성향으로 이어진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전문가들의 눈에도 유례를 찾기 힘든 현상이라고 설명하면서, "인간 혐오를 자극하는 병적인 게임과 미디어가 청소년들의 정신을 비뚤어지게 만들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는 폭력적인 게임과 미디어가 길러내는 잔인한 세대를 일컬어 '살인세대'라 명명한다.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케이블TV, 비디오, 게임을 통해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이미지를 팔아 왔다. 이토록 오랫동안 아이들이 잔혹한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시대는 단 한번도 없었다. "목을 베고 강간하고 눈알을 뽑고 사지를 절단하는 짓, 유혈이 낭자한 전투를 오락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 우리 상황이다.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뭐 영화일 뿐인데 라며 속삭인다."

폭력적 이미지에 장시간 노출돼다 보면,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닌 폭력을 답습하게 된다. 폭력 게임은 실제로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저자는 폭력 게임이 사용자의 뇌에 폭력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켜 폭력 행동을 억제하는 '내부 안전장치'를 망가뜨린다고 주장한다. 마치 에이즈가 신체 면역을 파괴해 다른 질병에 쉽게 걸리게 만들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종의 폭력 면역계가 약화하면서 폭력을 유발하는 요인에 점점 더 취약해지는 것이다.

게임 중독자들의 경우, 가상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인간의 고통에 대해 둔감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1년 69명을 살해한 '노르웨이 우퇴위아섬 청소년 캠프 난사 사건' 살해범은 비디오게임 중독자였다.

이 사건 직후 독일 본 대학교가 20~30대 슈팅 게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뇌스캔 실험 결과에 따르면, 일인칭 슈팅게임 사용자들이 실제 이미지를 보았을 때도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도호쿠 의과대학 연구자들도 컴퓨터게임이 시각과 운동에 관여하는 뇌 부위를 자극하는 반면 행동을 조절하고 감정·학습을 발달시키는 '전두엽'은 발달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건 '게임의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살해학'의 전문가로서 저자는 최근 유행하는 일인칭 슈팅게임이 일반적인 군대에서 활용하는 '살인 훈련'과 별반 차이 없다고 설명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은 명중률을 높이고자 사람의 표적을 만들어 훈련에 이용했다. 다만 군은 비전투 상황에서 병사가 저지를지 모를 폭력에 대비해 '엄격한 규율'도 같이 훈련토록 했다.

문제는 오늘날 게임 속 폭력 훈련에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게임을 통해 폭력이 필요하고 좋은 것(점수)이라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확산시키면서 규율은 가르치지 않는다면 '살인자 세대'를 양육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폭력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내미는 해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가장 빠른 조치는 "게임시간을 제한하고 게임을 완전히 없애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폭력적인 게임과 미디어 환경으로부터 아이의 삶을 단절시키는 '디톡스 과정'을 거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을 돈벌이 삼아 이용하는 문화산업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2013년 (비디오게임) 그랜드 세프트 오토 5가 벌어들인 돈이 전 세계 음악 산업이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 세대가 만든 오락문화를 방치하는 대가는 결국 모든 세대가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가 좀 더 크게 다가온다. 게임·미디어 그 속에 도사리는 폭력성이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만큼, 한 번쯤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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