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 ⓒ데일리굿뉴스
코로나19로 인해 온 나라가 신음하고 있다. 초·중·고교의 개학이 한 달 넘게 연기되고, 나라 대부분의 산업과 시장이 마비됐다.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으로까지 급속도로 퍼지면서, 이제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사람들은 ‘혹시 지금 지나가는 이 길이 터널이 아니라 한쪽이 막힌 막다른 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불안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길을 막다른 길로 만드시지 않으셨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망의 입구로 몰아넣으실 때도 있지만, 우리가 그 터널 가운데서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으면 언젠간 희망의 출구로 나오게 돼 있다. 이미 우리가 수많은 고난의 시기를 통과해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문제는 지금 당장 눈앞의 고난이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지기에 그것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2000년 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난 가운데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던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한 가지 신념 때문에 300여 년 동안 정부의 박해를 받았다.

그들도 피륙을 지닌 인간인데 왜 불안과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이 그 모든 슬픔·두려움·고통을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부활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그들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에 구차하게 그 고난을 피하지 않았다.

부활은 단순히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절망이 변해 희망이, 압제가 변해 자유, 불안과 염려가 변해 평안이, 종이 변해 아들이, 사망이 변해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활을 누리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 바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이다. 십자가가 두려워 피하는 자는 부활의 영광도 누릴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려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는 사람에겐 놀라운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자.

이번 코로나19의 파장에서 교회들도 벗어날 수 없었다. 전국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행정적인 요구에 의해 예배당의 문을 잠갔다. 지역 사회에서는 감염의 근원지라는 오명을 쓰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수많은 미자립 교회들의 존립 걱정, 신앙이 확고하지 않은 성도들은 오랜 시간 예배에서 멀어지면서 신앙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 미자립 교회들의 어려움을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나눠지고 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사모함이 커지고 있다. 고난의 망치를 두들길수록 연약한 믿음이 점점 단단한 강철과 같은 믿음으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 우리는 부활절을 맞아 부활의 영광이 아닌 부활을 준비하는 고난을 체감하고 있다. 함께 모여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도 드리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국교회는 어느 때보다 예수님의 부활에 깊이 동참하고 있다. 십자가는 종착지가 아니다. 지금도 힘들어 하는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십자가를 지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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