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나라 잠비아. 흔히들 잠비아 하면 빅토리아 폭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감비아’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짐바브웨, 앙골라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잠비아는 기독교인이 약 75%를 차지하는 공식적인 기독교 국가다.  

하지만 잠비아는 지금 오래된 악습으로 시름하고 있다. 조혼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명분 아래 여성의 존엄성이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잠비아의 조혼문화는 여성의 인권 문제를 넘어 빈곤의 대물림, 가정파괴로 이어지며 ‘국가의 재난’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월드비전과 국민일보, 서울 광림교회와 함께 지난 9월 10~14일 잠비아를 찾아 조혼문화의 실태를 살펴봤다. GOODTV 특별기획 <희망의 복음을 기다리는 땅, 잠비아를 가다>에서는 잠비아 조혼문화의 현황과 대안을 2편에 걸쳐 보도한다.
 
▲(오른쪽부터)김정석 광림교회 목사, 옥실리아 뷔페 퐁가 여성부 차관, 존 호세 잠비아 월드비전 회장이 간담회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학교로 돌아온 소녀들 “내 꿈은요….”
배움으로 절망 딛고 희망을 일구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서 동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총궤사우스. 지난 11일 이곳에 위치한 ‘희망의 집’을 찾았다. 조혼한 여성들을 돌보고 있는 쉼터 희망의 집에는 20여 명의 조혼여성들이 학업을 병행하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파란색 단체복을 입고 밝게 웃는 모습이 평범한 여학생의 그것 같지만, 이곳을 찾기까지 남모를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레베카(22•가명)는 2011년 15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2년 후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과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결국 아이가 16개월 되던 해 이혼했고, 시부모가 아들을 키우고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그는 “공부 마치고 직업을 구하면 빨리 아이를 데려와서 같이 살고 싶다”며 “가끔 우연히 길을 가다가 아들과 마주치는 게 전부다. 아들이 너무 보고싶다”고 말했다.

희망의 집을 포함해 현재 잠비아에는 조혼여성 쉼터가 총 3곳 있다. 공부도 하면서 숙식도 해결하는 쉼터의 여성들은 그나마 다행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여성들은 주로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먼 경우 ▲고아인데 실양육자(주로 친척)에 의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 ▲부모 중 한 사람이 만성질환자로 살림과 병간호를 맡아야 하는 경우 등이다

음파시에서 만났던 물야타(본지 9월 21일자 "악습을 넘어 재난이 되다…조혼으로 시름하는 잠비아" 참조)도 늦게나마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의 꿈은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해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다.

“내 딸 루시도 나중에 나와 똑 같은 인생을 살게 될 텐데 그 고통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했죠. 딸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내가 보호할 거에요. 딸이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결혼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조혼근절 캠페인 전개…”교육만이 희망”
미국 등 ‘조혼금지법’ 확산 분위기 눈길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는 조혼으로 고통 받는 잠비아 사회를 위해 전세계의 관심은 물론 한국교회가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데일리굿뉴스

잠비아 정부는 ‘소녀들은 신부가 아닙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조혼근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2021년까지 조혼율 40% 감소 달성, 2030년까지 조혼에서의 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가 가장 주력하는 것은 ‘교육’이다. 조혼여성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과 함께, 조혼이 ‘범죄’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인식 개선 노력이 그것이다. 특히 교육을 통해 여성들이 학업을 마치고 자립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빈곤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취지다.

지역마을 이장들과의 협력도 적극 추진 중이다. 조혼은 도심보다 시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시골사회에서 마을의 전통 지도자인 이장의 영향력은 상당하기 때문이다.

옥실리아 뷔페 퐁가 여성부 차관은 “마을이장들이 조혼과정에 적극 개입해서, 조혼을 시키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조혼이 성사되지 않도록 사전 중재하도록 하고 있다”며 “실제로 많은 마을 지도자들이 이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과 한국교회 성도들이 아프리카의 조혼근절을 위해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조혼을 막지 못한다면 교육을 받지 못한 소녀들로 인해 문맹율이 높아지고 가난의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결국 한 여성을 교육하는 것은 국가 전체를 교육하는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잠비아 월드비전 존 호세 회장도 조혼을 뿌리뽑는 데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잠비아 월드비전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조혼을 막는 데 힘쓰고 있다. 최근엔 조혼을 앞둔 150여 명의 여성들을 대피시키기도 했다”며 “전 세계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조혼을 근절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5월 미국 최초로 델라웨어 주가 18세 이하의 결혼을 불법으로 규정한 조혼금지법을 통과시켜 주목을 받았다. 텍사스와 버지니아 주는 이미 법안이 시행 중인데, 법원에서 성인 인정을 받은 경우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물론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미성년자의 결혼이 불러오는 각종 문제와 범죄들이 알려지면서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잠비아 정부는 조혼근절 캠페인을 통해 국민의 인식 개선과 함께, 여성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데일리굿뉴스

현지 종교계 노력 아직까진 역부족
한국교회가 구체적 역할 고민할 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조혼근절 캠페인에 종교계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퐁가 차관은 종교계 지도자들을 통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했지만, 종교의 영향력도 조혼이라는 악습의 고리를 끊어내기엔 아직까지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기독교 국가임에도 현지 교회들이 이러한 운동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 상황과 비교할 때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서울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는 “한국교회가 이들을 도와야 한다. 선한 사역에 앞장서 온 한국교회의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잠비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조혼근절 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미지의 땅 잠비아. 이곳의 영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미지의 땅 한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푸른 눈의 선교사들처럼, 잠비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복되는 일에 한국교회가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