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굿뉴스] 장기웅 선교기자= 솔라그라티아(Sola Gratia)의료선교회 대표인 백중필(Dr. Phillip) 선교사의 사역이 한국교회와 선교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1953년 1월 19일 대구에서 태어난 백 선교사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했다. 크리스천 가정의 3남 2녀 중 차남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어머니와 추상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예술과 교육의 가치를 일찍부터 배웠다. 

1967년 13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민 가서 새로운 문화를 접했던 그는 캐나다 맥길(McGill)대학에서 클라리넷과 생물학을 전공하고, 이후 UCLA에서 생물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백 선교사는 이후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학위를 취득하고, 계명대에서 의학박사(M.D)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내과전공의 과정을 마치며 의료와 신학, 음악에 걸친 깊은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오지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백중필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오지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백중필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의사이자 목사인 백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PCUSA)에서 목사 안수 후 동남아의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등에서 의료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에는 캄보디아 라이프대학교(Life University)의 부총장 겸 교수로 임명된 후 본격적인 의료선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미얀마에서는 현지 목회자들과 고아들의 건강을 돌봤다. 

또한 2018년부터 이듬해까지 에티오피아에서 명성의과대학과 병원에서 교수 및 국제진료소(MCM) 소장으로 봉사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사랑의 의술로 봉사했던 슈바이처를 자신의 멘토로 삼은 백 선교사는 캄보디아대학에서 간호과 학생들을 이끌고 매주 토요일 오지의 어려운 주민들을 섬기며, 믿음으로써 섬김의 자세를 실천했다. 이 경험은 학생들에게 생생한 교훈으로 남았으며, 그 중 일부의 제자들이 의대에 진학해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백 선교사는 태국과 미얀마의 산악 지역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의학 지식을 전파하는 중요한 사역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그는 지난해 10월 미얀마 오지에서 활동하는 현지인 사역자들이 오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복음 전파와 함께 의료 봉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이들 사역자들에게 기초적인 진료에 사용할 500달러에 달하는 의료용품을 담은 진료가방 20개를 기증했다. 이들 현지인 사역자들이 오지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환자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계기로 오는 4월에는 태국 카렌족 난민캠프에서 난민들을 대상으로 사역할 때도 역시 35개의 진료가방과 기초의약품을 기증할 예정이다.

 ▲홍상숙 사모와 백중필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홍상숙 사모와 백중필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백 선교사의 사역은 그의 아내 홍상숙 사모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호사 출신의 홍 사모는 간호사로서의 전문성 그리고 물질로 헌신하며, 백 선교사의 사역을 지속 가능하게 했다. 

백 선교사가 선교현지에서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실제로 그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MCM국제진료소장으로 사역할 당시, 한 학생은 백 선교사를 멘토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이후 신대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면서 선교 헌신자로서의 제2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처럼 그의 지도 아래 성장한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편 백 선교사의 아버지 백철극 화백은 도쿄 니혼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추상화가로, 서양화가 김환기 화백과 동기이며 절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백 화백의 미술 세계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가족을 대표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일로도 이어졌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철극 화백의 대표작들을 영구 소장하게 될 정도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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