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영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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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 변호사법 제24조는 변호사의 품위 유지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ㅇㅇ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재판 불출석 사실과 그로 인한 패소 사실을 은폐하는 위법을 저질렀고, 국민 정서상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로 대한민국 3만2,000여 명의 변호사의 품위뿐 아니라 신뢰와 신의성실을 기본으로 하는 직무특성에도 해를 기치는 심각한 일탈을 하고 있습니다.  권ㅇㅇ 노쇼 사건은  온 국민이 경악하였고 법조인들의 이미지를 땅에 떨어트린 막중한 사건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국민들은 이 재판의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학교폭력 사건을 수임해놓고 말썽을 일으킨 변호사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국민 동참을 호소하는 공개 탄원서의 일부다.

지난해 학폭 피해자의 항소심에 세 차례나 출석하지 않아 유족을 패소케 한 변호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대한 변호사협회는 곧바로 직권조사에 착수해 지난해 6월 징계위원회를 열고 권 변호사에 대해 정직 1년의 징계를 결정했다.

서울법원조정센터는 지난해 10월 “권 변호사와 소속 법무법인은 올해 12월 15일까지 원고(유족)에게 5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문을 당사자들에게 보냈다. 유족측은 조정을 거부한 채 법원에 이의 신청서를 제출하고, 손해배상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강제조정은 법원이 당사자들의 화해 조건을 정해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다. 한쪽이라도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은 성립되지 않고 정식 재판 절차를 밟는다.

2022년 6월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사사건에서 패소한 범인이 승소한 상대방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다.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 기사 피살 사건은 2000년 8월 발생했다. 당시 15살이었던 최 모 군이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범행을 부인해 징역 15년이 선고되었으며, 2심에서 범행을 시인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2003년 6월 진범으로 지목된 김 모 씨가 잡혔다. 김 씨가 범행을 진술했는데도 검찰은 김 씨에 대한 수사를 반대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나섰다. 2016년 11월 광주고법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99년 2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위치한 나라슈퍼의 3인조 강도 사건 범죄자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3명이 17년 만인 2016년 무죄 판별을 받았다. 역시 재심을 통해 진실이 밝혀졌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의 집념과 헌신의 결과였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사고와 이에 따른 재판마다 변호사가 참여한다. 얽힌 사연은 물론 재판 과정과 결과는 각양각색, 천양지차다.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여기며 변호사 윤리장전을 실천하는 변호사. 그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이 드러나 한 맺힌 억울함이 해소된다. 온 사회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한 반인륜 범죄자라도 변호사는 그 본연의 직분을 마다하지 않는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 부당하게 구속된 민주 인사와 학생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변호사도 많았다.

나태하거나 심지어 파렴치한 행위로 의뢰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량 변호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개인 일탈과 부당한 업무로 구속된 변호사도 여럿이다. 대한 변호사협회는 홈페이지 ‘징계정보 공개’란을 통해 징계를 받은 변호사와 법무법인의 실명과 내용, 징계 결과 등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10년(2012년 1월~2023년 7월) 간 수임료를 받고 변론 활동을 하지 않거나, 재판에 불출석해 패소하는 등 ‘성실의무 위반’으로 대한 변호사협회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은 변호사는 138명이다. 대상자의 80%가 경징계에 해당하는 견책과 과태료 처분에 그쳤다. 제명은 3건이며, 영구 제명은 단 한 건도 없어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이다.

최근 국회의원 공천과 관련해 변호사 출신 후보자들의 과거 수임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한 후보자는 경선에서 승리해 놓고 출마를 포기했다.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이 반인륜적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상대 진영으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는 경우는 다반사다. 마치 무슨 비리를 들춰낸 것처럼 호들갑이다.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정치 공세가 이어진다.

국민의 인권 침해와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한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고, 변호사의 헌법상 직무를 무시하는 행위다.

한국 미래변호사회는 “변호사 출신 후보가 특정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사회적 비난을 받는 현실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변호사 윤리규약 제16조 1항은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 고 명시한다. 헌법 제12조에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변호사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변호사들이 사건을 가려서 받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윤리규약을 무시하고, 사회 통념을 뛰어넘는 궤변 같은 변론은 지양해야 한다. 피해 상대자와 그 가족에 대한 2차 가해와 다름없다.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춘다 등이 변호사 윤리규약이다.

변호사 윤리장전처럼 변호사는 성실·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명예와 품위를 보전하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할 것이다. 법과 규정을 누구보다 잘 지켜야 할 법조 삼륜의 한 축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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