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칼럼] 기독교신앙의 공적인 차원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등록일:2020-09-05 1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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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재확산과 교회
 
 ▲정재영 교수 ⓒ데일리굿뉴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재확산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서울과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에 준하는 2.5단계로 강화하면서 다시 일상이 멈추는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전까지 비교적 방역이 잘 이뤄지고 바이러스도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었으나 최근 급속하게 재확산이 일어나면서 지금 시기를 놓치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다. 고위험 시설로 분류된 곳은 영업 행위도 제한되고 일부 기업들은 다시 재택근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경제 상황도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여기에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교회발 코로나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교회의 비대면 예배를 권고하면서 주일 예배조차 예배당에서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교회에서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교회에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해 교회에 대한 사회로부터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대한 교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또 다른 편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생명과도 같은 일이라며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이 이야기되듯이 우리 교회 역사에서 예배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일제 시대에도 그렇고 한국전쟁 시에도 그러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유사 이래 처음으로 예배당 예배가 중단되는 상황을 맞게 되자 많은 교회들이 엄청난 위협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일부 교회에서는 이 예배를 목숨과도 같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표현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신앙이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지켜온 뿌리이고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신앙은 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앙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우리까리 예배를 잘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가 확진자가 발생하고 주변 사람에게 감염을 시키면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방역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반대로 이웃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고 이웃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형국이 됐다.
이번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교회 주변에서는 교회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커서 주변 상인들이 교회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신앙의 공공성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신앙의 공적인 차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인 영역에서 표출돼야 한다. 지금은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전히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막중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도 공적인 기준에 의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예배당 예배를 고수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것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기준만 아니라 공공의 차원에서 신앙생활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익적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번 바이러스의 재확산은 주지하듯이 8월 15일 광화문 집회가 큰 요인이 됐다. ‘극우’로 표현되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대거 집회에 참여했고 이것이 바이러스 재확산의 도화선이 됐다. 우리나라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우익이나 좌익, 때로는 극우나 극좌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떤 일에든지 책임이 따른다. 모든 국민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자신의 일상을 포기할 정도로 애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의 기본이 되는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고 함께 숙식을 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고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거부하거나 집회 참가를 숨기는 등 방역을 방해하고 있는데 주최측 누구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역시 공공성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떠한 정치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공공의 관점에서 유익한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익이나 좌익이나 스스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공공성은 헤게모니와 당파성 너머에 있다. 공공성은 자기 이해 자체를 성찰적으로 대상화하고, 궁극적으로 자기 이해를 넘어서는 시야를 획득하지 못하면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은 공공성이 무엇인지 몰라서라기보다는 모든 인간 행위자들 스스로가 예외 없이 강력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 보다 넓은 차원에서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공공성을 위한 공론의 장

신앙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유럽의 시민사회는 살롱이나 커피숍 등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토론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교계에는 이러한 공론의 장이 부재하다. 초기 한국 기독교는 교회 안에서 활발한 토론과 회의를 주도하면서 ‘토론 공화국’의 면모를 보여 왔지만 지금의 한국 교회는 그저 믿기만을 강조할 뿐 깊이 ‘상고’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개신교회는 개교회주의 전통을 따른다지만 각 교회의 의사결정은 토론을 통해서 이뤄지기 보다는 교회 지도자인 목회자나 중직자들에 의해서 이뤄진다. 마찬가지로 교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난립해 서로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표출할 뿐 이들 사이에 협의와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기독교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들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에서는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이라도 교회 안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교회의 권위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신앙 좋은 사람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 안에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권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신앙관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조차 소외돼 왔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의견이 교회 활동에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공론의 장에서는 단순히 자기주장을 외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 하며 다른 사람들을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장을 통해서 배우려는 자세로 토론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이 진정으로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것이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의 공공성 회복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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