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데일리굿뉴스
미국 정치사에서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 가운데 하나로 2004년 대통령 선거를 꼽는다. 이라크 전쟁,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맞붙은 선거전이었다.
 
부시는 케리 후보가 이라크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 경제 정책에서 여러 번 다른 입장을 보였다며 ‘말 바꾸는 정치인’(flip-flopper)이라고 몰아 세웠다. 케리는 부시 후보가 베트남 전쟁 기간 중 미국 내 국가수비대에서 복무했다며 ‘탈영병’(deserter),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그 보다 4년 전 대선에서 플로리다 재검표 까지 갔던 아픔을 되갚아주고자 기대주 케리를 내세웠지만 부시 진영의 노련한 네거티브 캠페인에 밀려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2004년 미국 대선을 두고 미국의 유력 일간지 LA 타임스는 이렇게 평했다. “자기 후보의 장점을 선전하기보다 상대후보를 비난하는 광고가 더 많았다. 특히 후보들조차 진실을 왜곡하는데 기꺼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2004년 대선이 네거티브 캠페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미국의 정치평론가 커윈 c. 스윈트가 2007년 쓴 ‘mudslingers’(진흙탕 싸움)의 한 대목이다. 물론 바이든과 트럼프, 트럼프와 힐러리가 맞선 지난 두 차례 미국 대통령 선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04년 못지않은 진흙탕 선거전이었던 것은 자명하다. 세계적인 추세인가?
 
대통령 선거전이 넉 달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근래 볼 수 없던 최악의 진흙탕 선거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엊그제는 여야 후보들이 서로 구속될 사람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윤석열 후보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여러 정황이 이 후보가 공동정범임을 명백히 보여 준다”며 “민주당 모 의원 말대로 유력 대선후보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공세를 취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당시 이낙연 후보 측 인사의 말을 빌어 이재명 후보를 겨냥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틀 뒤 페이스북에 “윤석열 후보가 부산저축은행 수사 주임 검사로서 대장동 대출 건을 수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아무래도 구속될 사람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 후보 같다”고 공격했다.
 
유권자인 국민들 입장에서도 보고 듣기에 난감하고 거북한 이야기들을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주저 없이 제기하고 있다. 두 후보는 법원과 검찰의 판단을 놓고도 감정 섞인 설전을 이어갔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정직 2개월 징계가 정당했다는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총장 시절 피해자 코스프레로 대선 출마 명분을 축적했다며 “친일파가 신분을 위장해 독립군 행세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김만배 씨의 구속 영장이 기각된 데 대해 “이재명 면죄부 수사,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고, 성남시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말하며 “‘이재명 패밀리’가 저지른 상습 배임 행위는 국민 약탈, 국민 배신행위”라고 공격했다.
 
두 후보 진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방을 향해 공세를 취하고 있다.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을까?
 
홍준표 후보의 발언도 한계 수위를 넘나든다. 국민의힘 8인 경선에서 하태경 후보를 향해 “줘 패버릴 수도 없고”라고 말했다가 “막말 본색은 여전하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지만 여전히 격한 감정을 직설적으로드러낸다. 홍준표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향해 “감옥 가야 할 사람”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홍 후보는 윤석열 후보와 맞장 토론에서 윤 후보와 가족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며 “이재명 후보와 도덕성은 피장파장”이라고 공격했다. 윤석열 후보는 “인신 공격만하고 이게 무슨 검증인가”라며 “격을 갖춰라”고 반발했다. 앞서 윤 후보와 홍 후보는 "이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 당은 없어지는 것이 맞다", "못된 버르장머리 고치지 않고는 앞으로 정치 계속하기 어렵다"며 서로를 자극하기도 했다.
 
지난 15일 이뤄진 국민의힘 1대 1토론은 여러모로 주목됐다. 4인의 후보가 두 그룹으로 나눠 토론을 벌였다. 지상파 방송사 2곳이 금요일 황금 시간대를 할애해 동시 생중계한 점도 이채로웠다. 시청자의 눈높이로 지켜봤다. 유승민 후보와 원희룡 후보 간 1대1 토론은 두 후보의 생각과 입장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북한 핵, 주택 정책, 복지 정책까지 현안을 두루 챙기고 서로의 견해를 물었다.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 간 1대1 토론과는 달랐다.
 
18일 경기도 국정감사 역시 대장동 특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주목 받았지만 실망스러웠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청문회였고 대장동 특혜 의혹이 집중 제기됐지만 새로운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공세와 이재명 후보의 주장이 비켜갔다.
 
국감장의 화제는 오히려 ‘이재명 후보의 조직폭력배 비호 의혹’이었다. 경찰 출신인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조폭 연루설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1억 돈다발 사진을 근거라며 공개했다. 몇 시간 후 김 의원이 제시한 돈 다발 사진은 가짜로 판명됐다.
 
유권자인 국민은 어디까지 듣고 보고 믿어야 할까? 선거전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모르지만 이번 대선이 최악의 선거전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보자들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영예롭지 못한 일이니까.
 

[송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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