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교수ⓒ데일리굿뉴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은 <개미>란 소설의 제2부 <개미의 날>이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당신들은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을 측정하고, 틀 안에 넣고, 분류하고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나눈다. 당신들은 모든 것을 잘게 자르면 자를수록 더욱 진리에 다가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과학적 분석이고, 입증 가능한 방법만이 진리로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매미를 잘게 자른다고 매미가 왜 노래하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난초 꽃잎의 세포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고 해서 난초꽃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처지가 되어보아야 하고 그것들과 한마음이 되어보아야 한다.” 

그렇다. 정서적으로 상대의 역할과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어야 진정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매일매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도급에 속한 사람들도 말로는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리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정으로 상대를 역지사지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더 평화로워지고 살기가 좋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은 사고와 행동의 불일치, 믿음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맹자는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의 첫 번째로 '측은지심'을 들었다. 측은지심이란 남의 불행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마음이다. 다시 말해 나보다 못나고 가진 것이 부족한 타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이 인간됨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 말은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아야 되는데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대가 주장하는 이유나 생각 등은 듣지도 않고 자기주장만 되풀이 한다면 그것은 대화나 소통이 아니라 아귀다툼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는 궁극적인 원인 중 하나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 사회를 바꾸는 데 도움을 주는 불씨가 될 수 없다.
 
요즘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일명 '내로남불'은 전형적인 이중 잣대다. 출근 시간을 어기는 것을 비난한다면 마땅히 퇴근 시간을 지키게 해야 바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출근 시간을 어기는 것도 비난하고, 퇴근 시간을 지키는 것도 똑같이 비난한다. 누가 보아도 바르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여당과 야당이 뒤바뀌어 각료 지명절차 청문회 과정에서 '내로남불'이란 묵은 유행어가 재조명되는 것도 입장이나 처지에 따라 주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만든다. 예의범절, 법질서, 제도 같은 것도 어려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서로를 위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을, 불교는 자비를, 유교는 어짐을 강조했다. 제각각 다른 표현으로 인간의 도리를 강조했지만, 이를 한마디로 종합해보면 공통된 원칙은 '배려'에 있다.
 
그렇다면 왜(why) 배려해야 하는가? 무엇을(what) 배려해야 하는가? 어떻게(how) 배려해야 하는가? 그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배려는 선택이 아니라 공존의 원칙이다. 다음으로 배려는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려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현장인 사회와 직장, 가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고 백남기씨 사인이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된 사례에서 보듯, 이런 현실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예수님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만일 역지사지 정신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진실과 사실이 달라졌겠는가? 달라질 수도 없고 달라져서도 안 된다. 어느 쪽에서 보든 원칙이 통하고 진실이 통해야 된다. 

이제 우리의 일상적인 이중 잣대부터 바꾸어야 한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습성과 사고방식, 구조의 허물을 뱀이 허물을 벗듯 벗어 던져야 한다. 그것이 소통을 강조하고 배려를 강조하고 적폐를 청산하자는 오늘의 시대정신이다.


김성윤 정책과학연구소 소장은
단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同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독일 자유베를린대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단국대학교 법정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충남포럼이사장, 통일신문 논설위원, 단국대학교 정책과학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며, 관심 분야는 미래연구론, 남북관계론, 정책학 이며, 저서로는 〈정책학 개론〉 〈현대 사회의 이해〉 〈한반도 분단극복을 위한 정치리더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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