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식 칼럼]우발적 폭력 사회의 애통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등록일:2018-11-11 16:23:48

  • 인쇄하기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신동식 목사.ⓒ데일리굿뉴스
2018년 10월14일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입니다.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 불행한 한 젊은이의 우발적 폭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아주 끔직한 일이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강력범죄 28,927가운데 가운데 우발적 범행 동기가 9,374건으로 전체 범행의 32.4%를 차지하였습니다. 이것은 2016년도에 비하여 약 1.5%정도 증가한 수치입니다. 특별히 우발적 살인 사건은 905건 가운데 357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하루에 하나씩 우발적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하루에 한 명씩 우발적인 분노와 충동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그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슬픈 현실이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점점 부강한 나라로 발돋움한다는 우리 시대에 이렇게 끔직한 이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순간적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는 오랜 잠복기 후에 나타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지 개인의 일탈로 보면 안 되고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공동체의 문제라는 책임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떨어진 자들에 대하여 무시하는 태도가 강합니다. 패배자에 대한 비하와 조롱의 모습이 만연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유치원시절부터 배워 옵니다. 학교에서부터 그러한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반복 당합니다.

또한 사회에서 패배자로 냉대 받습니다. 이렇게 가슴 깊이 패배자라는 의식이 잠복되어 있다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의 무시 앞에서 폭발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패배자의식의 변화가 없이는 이러한 불행은 반복될 것입니다. 특별히 갑질 문화는 잠재적 살인을 가져옵니다. 자신이 받은 무시를 자신의 또 다른 을에게 배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끔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만 그 문제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가정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우리 사회는 점점 위기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의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가정 뿐만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가정의 문제도 만연합니다. 가정에서 기초적인 인간관계, 인격적인 사회관계를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온 이들의 일탈은 매우 심각합니다.

종종 부자들의 폭력적 일탈을 자주 봅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기초적으로 가정에서 인격적인 교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만 받았기에 사람의 역할에 있어서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인 것입니다. 이들 역시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잠재적 살인을 할 수 있는 야만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인권을 강조하는 인권 사회입니다. 그런데 인권 사회에서 매우 빈약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의식입니다. 개인의 존중이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빈약해지면 개인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의식을 상실한 것은 우리 시대의 실책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기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에 있어서는 불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가 세상과 다르다는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신뢰 회복은 지역사회에서 피난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은 작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 가운데 하나는 교회는 은사공동체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학력과 권력과 물질적 성공이라는 승자들의 모임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 역시 패배자를 양산하는 곳이 된다면 더 이상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임을 인식하고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합니다.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이 사람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사는 것이 판단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교회는 패배자 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 기다리고 인내하고 사랑하는 곳이 될 때 세상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역에 위치하면서 위기 가정을 돌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특별히 국가기관과 함께 동역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당장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위기 가정을 돌아보는 것은 교회를 위한 일이 됩니다. 더구나 위기 가정의 아이들이 사회와 어른에 대한 분노를 가지지 않도록 돕는 일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점점 해체를 넘어서 세속화로 급속하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세속화 시대는 배려보다는 투쟁이 앞섭니다. 성경이 말하는 도덕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의 생각이 더욱 중요해 질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경의 가치를 더욱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망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발적 폭력 사회의 애통함을 풀어 줄 수 있는 곳은 오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도록 우리가 힘써 싸워야 합니다. 그 길은 지난한 여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가야 할 곳입니다. 피난처를 찾을 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작권자(c)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작성0 / 최대600바이트(한글300자)선거실명확인
    goodtvICGICGCCMLOVE굿피플KCMUSA기독뉴스GoodPeople아멘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