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구 선교사 ⓒ데일리굿뉴스
선교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물 중 하나는 ‘한국라면’이다. 현지의 음식이 입맛에 잘 맞지 않을 때를 대비해 늘 라면을 비상식량으로 준비하는 선교사 가정이 많다.

선교지로 가면 ‘한국라면’은 한국 라면시장의 과다경쟁에 밀려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불안정한 위치가 아니라 몸값이 부풀려지고,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치가 높아져 그 위세를 실감하게 된다. 실제 가격도 한국과 멀수록 더욱 비싸진다.

이러다보니 선교사들 사이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간혹 ‘한국라면’을 대접하기도 하고,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이웃 선교사들에게 전해 주는 물품 가운데 ‘한국라면’이 포함되면, 활짝 웃는 선교사들을 많이 보게 됐다.

한번은 아주 오지에 계신 00 선교사께 ‘한국라면’ 한 상자를 사가지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더운 지역이라 현지에서 는 국물을 버리고 라면을 조리하는데(우리나라의 짜장라면이나 비빔라면의 조리법과 같다),

마침 그 지역을 방문한 손님이 현지 음식이 잘 맞지 않아 고생을 하다가, ‘한국라면’ 한 상자를 보고, 선교대회 간식인 줄 알고, 행사를 돕던 현지인에게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다. 라면이 준비됐다는 소식에 식당으로 내려 온 모든 선교사들은 ‘한국라면’의 상징인 얼큰한 국물은 모두 버려지고, 면에 라면 스프가 잔뜩 엉겨버린 라면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개인 선물인 ‘한국라면’이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진 모습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아쉬움을 쉽게 달래지 못하던 00 선교사의 어이없다는 표정의 웃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소고기 먹는 것이 엄격한 현지 지역의 공항에서 누가 ‘한국라면’을 신고했다. 라면스프의 재료에 소고기가 들어 간 것이 이유였다. 이로 인해 한인마트에서도 3개월 정도 ‘한국라면’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한동안 ‘현지라면’을 먹어야 했는데, 이를 계기로 아시아 지역의 여러 라면 맛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필자의 경우는 ‘한국라면’ 가격이 비싸서 한국에서 ‘대용량 라면스프’를 구해서 간다. 저렴한 가격으로 ‘얼큰한 한국라면 국물’ 맛을 낼 수 있고, 면은 가격이 저렴한 ‘현지라면’의 면만 이용한다. 부족한 맛이 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라면이 나온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라면티백’이 출시됐다. 여행자들의 고충을 고민하며 개발했는데 상품이 출시되자마자 많은 주문 폭주가 이어진다고 한다. 머리가 좋은 한국 사람들은 라면 티백만이 아니라 ‘사골국물 티백’, ‘육개장 티백’들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현지에서는 현지음식을 먹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외진 곳에 갈 경우 ‘한국라면’을 준비해 간다. 그리고 현지 식당에서 음식이 좀 맞지 않아서 ‘한국라면’을 좀 먹고 싶은데 주방을 좀 빌릴 수 없냐는 요청과 함께 맘 좋은 주인들에게 약간의 비용만 쥐어줘도 쉽게 주방을 빌릴 수 있다.

현지인들이 ‘국물라면’의 경험이 없기에 국물 없는 라면을 줄 것이 염려돼 직접 주방에 들어가서 ‘한국라면’을 끓이는 것이다. 계란이나 파도 있으면 넉살 좋게 좀 달라고 한다. 거기에다 쌀밥이 있으면 얼큰한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히말라야 산맥을 가족들과 방문해 해발 3,000m 고지의 마을에서 현지인 주방의 도움을 받아 끓여 먹었던 ‘한국라면’의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라면이 선교현지에는 주식도 되고, 때로는 비상식량도 된다. 어떤 경우에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되는 선교지에 여러분의 작은 사랑이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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