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2월 21일 오전 11시께 에어 프랑스 707편이 김포공항에서 이륙했다. 이날 비행기에는 광부 123명이 타고 있었다.
 
 ▲5월 8일 태백 파독 광부 기념관에 전시된 독일 탄광 지하 막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광부들 사진. 태백 파독 광부 기념관은 강원 태백시 철암동 옛 태백농협 건물에 지난 4월 30일 문을 열었다. ⓒ데일리굿뉴스

광부들은 19시간을 날아 한국시각 22일 오전 5시 독일 뒤셀도르프공항에 도착했다. 머나먼 이국 땅에 도착한 이들은 아돌프 광산과 함본탄광에 나눠 배치됐다

대한민국의 파독 광부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지난 1963년 12월 21일부터 1977년 10월 26일까지 약 15년간 대한민국의 젊은이 7,936명이 독일 탄광으로 떠났다.

파독 인원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70년이다. 그해 1,305명이 독일로 갔다.

파독 광부들은 주로 루르탄광과 에슈바일러탄광에서 일했다.

광부의 파독정책은 독일의 광부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하는 동시에 미국이 독일에게 요청했던 한국 재건지원의 약속 이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자 했던 독일정부의 의도와, 실업난과 외화획득을 위해 해외인력수출을 원했던 한국정부의 이해가 부합돼 이뤄진 조치였다.

이 같은 파독 광부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관인 ‘태백 파독 광부 기념관’이 최근 강원 태백시 철암동 옛 철암농협 1층에 문을 열었다.

이 기념관에는 1961년 신문 기사, 1971년 한국해외개발공사의 파독 광산근로자 최종합격자 발표 신문 광고, 명단, 독일 탄광에서의 작업 모습 사진, 1970∼1980년대 독일 현지 생활 모습 사진 등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또 기념관에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독일에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는 파독 광부의 역사적 의미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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