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택의 역설이 안긴 불행의 시대

김성윤 교수 (단국대 명예교수)

등록일:2019-09-28 0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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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윤 교수 ⓒ데일리굿뉴스
선택이 어려운 경우는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은 경우이다. 오늘날은 SNS(사회 관계망)통해 많은 사람과 대화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할 친구가 지척인데 진실한 대화를 나눌 친구는 없다. 이 친구 저 친구와 짧은 대화만 주고 받다보니 평소에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바스 카스트의 책 ‘선택의 조건’은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 사례 중의 하나로 어떤 사내가 아주 작은 외딴 섬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섬에는 여자라곤 딱 한 명밖에 없다.

이 경우 그 남자는 어떻게 하면 저 여자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하게 된다. 만약 섬에 여자가 열 명쯤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중 한 명과 잘된다 해도 또 다른 여자를 아홉 번이나 사귈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열려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동네에 사는 처녀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만큼 선택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그 결혼도 부모님의 의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통신수단을 비롯한 교통의 발달로 이성간의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만날 수 있는 수단도 다양해졌다.

더욱이 결혼 자체를 없던 일로 돌리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러다보니 결혼을 안 하고 미루거나 아예 독신으로 사는 젊은 층이 많아졌다. 실로 선택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는 이런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선택한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경우 바로 돌아서서 다른 선택지를 찾는다고 했다. 예를 들면 맘에 안 드는 상품을 구매했다면 바로 반송처리 한다든가, 레스토랑에를 갔는데 서비스나 환경을 비롯한 음식이 마음에 안 들면 앉지도 안고 바로 나가 버린다.

만약 레스토랑이 주위에 하나밖에 없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생각과 관점을 바꾸고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갈라설 수 없어 그 배우자와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배우자의 좋은 점과 고마운 점만을 찾으면서 잘 살아간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현상도 사회변화에서 오는 진통중 하나이다.

나이 들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지금 살고 있는 상대보다 더 나은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선택 폭이 넓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세태의 문제도 아니요, 법적 문제도 아닌 선택의 문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불편해도 집을 수리하고 아끼며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교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선택의 폭이 제한돼 현실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관점을 바꾸고 그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일방 통행선위에서 차가 밀린다면 불편을 감수하고 기다린다. 그래도 후회가 안 되는 이유는 선택의 폭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관점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체념한 상태에서 참고 기다리므로 불만요소도 적어진다.

그러나 왕복 복수 차선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유독 내 차선만 막힌다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도 불만이 적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동네에 교회가 하나 밖에 없다면 그 교회를 행복한 마음으로 다닌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교회가 동네 가까이 여럿 있다면 아예 교회를 가지도 안거나 이 불평 저 불평을 하면서 교회를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택 가능성이 넓어진다는 것이 꼭 행복이나 만족의 길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더 행복하거나 만족했을 것’이란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이래서 다양한 선택이 가능할수록 만족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만족도는 낮아진다. 이게 선택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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