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 여기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가량 나가면 맹골수로 세월호 침몰 지역이 나온다.  ⓒ뉴스미션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헬기 한 대가 앉았다 다시 왔던 길로 서둘러 돌아간다. 이때 중년으로 보이는 부부가 서로 팔을 잡아주며 헬기가 앉았던 부근 간이천막 속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여자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터져나온다. 일순간 저녁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카메라를 만지던 기자, 길을 지나던 사람들 사이 정적이 흐른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생때같은 자식이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안다. 이제는 주검을 찾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는 것을 말이다. 애 끓는 어미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그래도 저 부모는 아이를 찾았네...’라고 안도해야 하는 잔인한 현장에서 모두가 그만 고개를 떨군다. 세월호 침몰 10일을 넘기고 있는 진도 팽목항의 상황이다.

단 한명의 생환자 없이 주검만 늘어 실종자가 사망자보다 적어진 지금, 팽목항은 정적이 감돌고 있다. 생존에 대한 간절함은 초동 대처에 미흡했던 정부에 대한 분노,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변했고, ‘이제 제발 시신만이라도 찾게 해달라’는 애원으로 바뀌어 속울음을 삼키고 있는 중이다.

감리교 호남서연회 김두현 목사(진도교회)는 “사고 수습 기간이 길어지면서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식이 아닌것에 안도했다면, 지금은 죽은 자식 찾아 장례식장으로 떠나는 유족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로움, 두려움이 이들에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내 자식은 영영 찾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이들에게 있다. 매일 새벽 5시 기도회를 하면서 찾아오는 이들을 위로하고 기도해주고 있다”

김두현 목사는 감리교 호남서연회 전남서지방 소속으로 진도체육관 옆에 마련된 감리교 부스에서 생수, 생필품 등을 나눠주고 있다. 사고 3일 동안은 로만칼라를 착용하고 현장에 찾아가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다가가 기도하며 보냈다고 했다.

부스 안에는 여기저기 기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권사, 집사, 장로 등 기독인 가족들이 찾아와 실종자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쪽지에 적어 남기고 갔다. 그 중에는 ‘000 시신 수습 감사합니다’란 메모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만난 한 실종자 친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외로움이 있다. 2학년 8반 손주녀석이 아직이다”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과 좀더 가까운 팽목항에서 만난 한 실종자 가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습되는 시신도 줄고 애가 탄다. 어제도 해수부장관이 찾아왔기에 몰려가서 크게 항의했다. 그러고 나니 시신이 좀 더 오는 것 같더라”라며 속절없는 불신을 드러냈다. 실종된 단원고 2학년 2반 김00 학생의 큰엄마란다. 처음에는 아이 부모가 함께 내려왔는데, 중학교 아들이 혼자 안산에 있는 것을 힘들어해서 엄마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정부쪽에선 인양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기간도 길어지고, 그나마 수색작업도 중단된다.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진도를 찾은 25일. 그 다음날부터 사고 지점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비가 오고 수색도 중단됐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자꾸만 물거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오랜 기다림으로 지치고 희망을 잃은 가족들에게서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누군가 안타깝게 말했다. 잔인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지금, 교회는 뭘해야 할까 묻고 또 묻는다.

오늘로 사고 13일째를 맞으며 사망자가 거의 190명에 가까워졌다. 점차 사람들의 시선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안산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가족을 기다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팽목항에 눈을 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절망 속에 불신과 외로움, 우울감,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곁에서 함께 울며 기다려주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110여명의 학생과 어른들이 진도 앞바다에 갇혀있다.

한국재난구호 조성래 목사는 “실종자 가족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시점까지 팽목항에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옆에 조용히 있어주며 안아주고 들어주는 일 밖엔 할 게 없다. 기독교가 잘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나. 그냥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
 
 ▲팽목항에는 전국에서 보내온 기도편지가 많았다. 사진은 한 게시판에 걸려있는 응원의 메시지 ⓒ뉴스미션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인 진주실내체육관 모습.  ⓒ뉴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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