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환자가 수 차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내 의료인 안전 보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료인을 상대로 한 병원 내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폭행 당했다" 의료계 종사자, 평균보다 5배 높아  

3일 오후 6시 기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강북삼성병원 의료진 사망사건에 관련한 의료 안정성을 위한 정원'에 4만7000여 명이 참여했다. 청원자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생명 및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서의 폭행을 강력히 처벌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주장했다.
 
병원에서 진료 중인 의료진이 환자의 폭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그 동안 수 차례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병원에서 의료인 폭행, 협박 등으로 신고, 고소된 사건은 900여 건에 달했다. 하루에 2~3번 꼴로 의료인 위해 행위가 발생한 것.
 
의료인을 상대로 한 병원 내 폭력은 해외에서도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 꼽히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2018년 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건·복지 서비스 종사자들이 겪는 폭력은 전체 근로자 평균보다 5배나 높았다. 경찰이나 교도원이 부상을 입는 비율보다도 높았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내과 교수는 "인턴, 전공의 시절부터 진료 중에 환자에게 멱살을 잡히고 뺨 맞는 정도의 폭행은 안 당해본 의사가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라고 털어놨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복되는 응급실 폭행 사건으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할 경우 가중처벌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일반 진료실이나 병동에서 폭력을 행사한 경우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관련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진 안전 장치가 시급히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가중처벌·현행범 체포까지 가능
 
선진국에서는 의료기관 내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엄격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의료계 종사자에 대한 폭행을 중범죄로 다룬다. 미국 응급전문간호사협회에 따르면 앨라배마 주와 콜로라도 주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최고 징역 7년 형에 처할 수 있는 2급 폭행죄로 분류한다.
 
대다수 주에서는 의료인 폭행을 가중처벌하고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응급실에 들어가려면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도록 하고, 사법기관과 연결된 직통 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했다.
 
병원에 상주하는 경비 요원의 존재감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경비 외에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어 물리력을 쓸 경우 쌍방폭행에 연루될 수 있다. 강북삼성병원 사건에서도 경비요원들은 계속 흉기를 휘두르던 박씨가 주저앉고 나서야 그 주변을 통제했다. 수갑은 경찰이 도착한 뒤에야 채워졌다.
 
반면 미국에서는 폭력 빈도가 잦은 병원의 경비요원은 전기충격기 등 무기를 소지할 수 있고, 폭력 발생 시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도 있다. 일본과 영국에서도 경비요원이 의료진에게 폭행·폭언을 가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강제 퇴실시키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준사법권을 가지고 있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해외처럼 진료실 내 대피를 위한 뒷문, 비상벨, 안전요원 등 세 가지 요소는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의료 사고 등 환자가 의료인을 폭행하는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사고에도 피해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당사자인 의료인에게 직접 불만을 해소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
 
이런 측면에서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병원에서 억울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환자가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의료인 폭행 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병원 내부에서의 폭력은 의료인 개인의 생명은 물론, 다른 환자의 진료권까지 방해하고 빼앗는 행동이다. 정부는 일반 진료 현장에서의 폭행 방지를 위해 의료계와 함께 빠른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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