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유적지탐방]김포의 3.1운동 이끈 청년들…여성 신학생도 있다

박혜정(hyejungpark@goodtv.co.kr)

등록일:2019-04-28 19: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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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서울 곳곳에서 펄럭이던 수많은 태극기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당일에는 대대적인 행사들이 열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한풀 꺾인 모양새다. 이에 본지는 3·1운동 기념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취지에서 수도권과 주요 지방의 3·1운동 유적지를 소개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편집자 주>

김포지역 3·1운동 규모는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큰 것으로 알려졌다. 1919년 3월 22일~29일까지 8일 간 김포 9개면 중 무려 7개면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집회 횟수는 총 15회, 참여인원은 약 1만 5,000명에 이른다. 월곶면, 양촌면, 고촌면이 김포시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했던 주요 지역이다. 김포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 봤다.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된 오나리장터ⓒ데일리굿뉴스 

김포의 가장 큰 만세운동, 양촌 ‘오나리장터’
 
가장 큰 만세운동이 일어난 양촌면의 오나리장터 일대에는 현재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을 비롯해 상가, 도로 등이 들어서 있다.
 
오나리장터에서만 3차례의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1·2차 만세운동은 23일 각각 다른 두 조직에 의해 전개돼 수 백명이 모여들었다. 3차 만세시위는 27일 밤중에 7천여 명이 참여한 횃불시위였다.
 
김포에서 타오른 뜨거운 독립의 횃불은 청년들의 역할이 컸다. 1차 만세운동은 오후 2시 청년 박충서의 주도로 이뤄졌다.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독립만세를 외친 박충서는 거사 전 친척들과 독립만세 시위계획을 알리는 격문과 경고문을 작성하고 양촌면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이와 관련 최종월 문화관광해설사(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는 박충서에 대해 “경성제1고보(현 경기고)를 다닌 20대 인재였다”며 “그는 서울에서도 만세시위에 참여하다 일본경찰로부터 협박을 받는 가족들을 위해 귀향해 양촌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거사 전 주재소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전화선 절단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 실패하고 시위 중 체포됐다”며 “2년 옥고를 치른 후 출소했으나 폐결핵으로 37세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같은날 오후 4시 2차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정인섭, 임철모, 이효원의 계획에 따라 300여 명의 시위대가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임철모는 당시 태극기를 휘두르며 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 해설사는 “임철모는 옥중에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보이는 패기를 보였다”며 “결국 일제의 극심한 고문 끝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직했다”고 말했다.
 
 ▲양촌면 양곡리에 위치한 '양촌·대곶면민 만세운동 유적비'와 '대한독립군위령탑'ⓒ데일리굿뉴스 

이살눔, 김포 최초 만세운동 이끈 유일한 여성

또 다른 만세운동 대표지 월곶면은 3월 22일, 28일, 29일 ‘군하리 장터’ 만세운동이 펼쳐진 곳이다. 현재 면사무소와 생활문화센터 등이 세워졌고, 곳곳에 향교와 기념비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22일 오후2시에 벌어진 군하리장터 만세운동은 김포 최초 민족 운동이었다. 이 중심에는 기독교 여성 이살눔(본명 이경덕, 34세)이 있었다.
 
이살눔은 당시 신학생으로서 경성 예수학교(이화학당)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군하리장날 맨발로 통진향교, 면사무소, 주재소 등 주요 관공서를 뛰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최 해설사는 “이 씨는 형무소에 갇혀 고문을 심하게 당해 형을 채우지 못하고 중병으로 가석방됐다”며 “이후 전도사로 활동한 그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양아들이 있었다. 애석한건 중병으로 사망하자 양아들이 그를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공동묘지에 묻어 아직까지도 그 장소가 묘연하다”고 전했다.
 
 ▲김포 월곶면 푸른언덕교회 내 '이경덕전도사 3·1운동기념비'ⓒ데일리굿뉴스 

월곶면 푸른언덕교회 마당을 가보니 ‘이경덕전도사 3·1운동기념비’가 있었다. 2003년 8월 15일 이살눔의 공을 기리며 지역 내 교회들이 협력해 세운 것이다. 1992년 고인은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촌면 만세운동에도 당시 20세 학생 김정의가 선도해 동네 주민 50여 명과 신곡리 뒷산에서 24일, 25일 이틀 간 독립만세를 외쳤다.
 
한편 김포시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5월 12일까지 독립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기획전-전국에 울려퍼진 함성’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최 해설사는 “김포시 3·1운동의 특징은 젊은 지성인들의 주도 하에 평화적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말했다.
 
 ▲3·1운동 만세 시위지 월곶면사무소ⓒ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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