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민주화 운동이었던 ‘6·4 톈안먼(天安門·천안문) 사태’가 30주년을 맞았다. 30년 전인 1989년은 민주화를 외친 중국 학생들이 탱크를 맨몸으로 가로막는 가운데 무차별하게 학살당하는 등 피바다가 된 날이다. 하지만 중국의 톈안먼 사태는 사실상 빛 바랜 역사가 되고 있다. 반면 국제사회는 중국을 향해 진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 중국 내외 분위기가 상반된다.
 
 ▲톈안먼 시위 당시 탱크를 맨몸으로 막으며 민주화 시위를 벌인 일명 '탱크맨'의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국제사회, ‘톈안먼 사태’ 반성 촉구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1989년 6월 4일 수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친 사건이다.
 
이날은 인권이 무자비하게 탄압된 날로 기록될 만큼 수많은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당시 중국 지도부는 시위대 진압을 위해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와 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시위 학생들과 시민들을 유혈 진압하고 광장을 쓸어버렸다. 이후 많은 공산당 국가 독재자들은 더 이상 야만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됐다.
 
아직까지 톈안먼 사건으로 인한 정확한 사망자 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이를 두고 중국 당국에 의혹을 제기해 왔다. 당시 베이징 시장 천시는 “200명이 숨지고 3,000여 명이 다쳤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정부가 기밀 해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1만 명이 넘는다.
 
실제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톈안먼 사태 30주년 기념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톈안먼 사태 당시 정확한 희생자 수를 공개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인권개선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톈안먼 사태에 대해 “민주주의와 인권, 만연한 부패 종식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30년 전의 사건은 여전히 우리의 양심과 전 세계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꿈틀거리게 한다"며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그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면 언제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만 역시 중국의 반성을 촉구했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중국의 민주화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며 “메이리 다오 사건(1979년 대만의 민주화 시국사건) 이후 대만은 민주와 자유의 길을 걸어갔다. 중국 역시 이 길로 가기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톈안먼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민주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며 “역사적 과거에 대해 중국 당국기 조속히 사과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역사 지우려는 중국
 
하지만 톈안먼 사태가 아킬레스건인 중국 정부는 역사를 지우려 애쓰고 있다. 국제사회 촉구에도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의 전방위적 통제 강화에 톈안먼 광장은 평소보다 감시가 강화됐고 지하철 또한 톈안먼 서역은 승객이 내릴 수 없도록 폐쇄됐다.
 
수십 명의 인권 활동가들은 강제로 베이징 밖으로 망명되거나 구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 ‘중국인권수호자’와 ‘휴먼라이츠워치’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톈안먼 사태 당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모인 ‘톈안먼 어머니회’ 일부 회원들에 대해 이동과 통신을 제한했다.
 
또 톈안먼 민주화 시위와 관련된 키워드 검색도 제한됐다. 사태과 관련한 ‘탱크맨’ 사진 등 관련 사진들, 톈안먼을 의미하는 ‘류쓰’, ‘5월 35일(5월 31일+4일=6월 4일)’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대대적 통제와 검열에 중국의 젊은 층들은 톈안먼 사태 비극을 모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부모, 학교, 매체, 인터넷이 톈안먼 사태에 대해 침묵하는 환경에서 자란 중국 젊은 세대들은 톈안먼을 알지 못한다”며 “시위를 뒷받침한 사회적 가치와 믿음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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