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령사회다. 오는 2025년에는 고령자가 20%를 넘으며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문제는 고령뿐만 아니다. 극심한 저출산까지 더해졌다. 기형적 인구구조에 따라 40여 년 후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 부양 부담이 가장 큰 나라가 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처럼 노인 돌봄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는 보고가 발표됐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방문노동자이 단순한 감정노동을 넘어 수용할 수 없는 과도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 홍보 포스터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사회서비스 수요 늘어난 만큼 주민 갑질도 증가
 
"임신한 저한테 '배 안에 있는 아기를 어떻게 하겠다' 이런 말을 들으니까, 일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서울지역 한 주민센터 소속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이하 찾동) 복지플래너 A 씨(여, 30대). 그는 임신했을 당시 배 속의 아이를 두고 살해위협을 당했다. A 씨를 위협한 건 자신이 담당하는 주민이었다. 복지직 공무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2~3일 차부터 감정노동에 시달리던 A 씨는 이 사건 이후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소장 이정훈, 이하 센터)가 최근 발행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방문노동자 감정노동 연구-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를 중심으로' 연구보고서에 보고된 사례 중 하나다. 보고서는 방문노동자의 감정노동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작성됐다.
 
심층면접조사는 구청 소속 복지플래너 8명과 방문간호사 10명을 대상으로 △노동과정 △감정노동 경험 △감정노동과 폭력 상황에 대한 대처 △감정노동과 노동환경에 따른 부정적 영향 △감정노동과 사회문화적 맥락 △감정노동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 등이 진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찾동 방문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임한 방문노동자들은 업무 관련 어려움이나 직접적인 언어·물리적 폭력, 성추행·성희롱 등 다양한 감정노동 경험을 호소했다. 심지어 고독사나 자살 등 외상사건을 마주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노동조건과 환경에 따른 어려움도 제기됐다.
 
17년 경력의 복지플래너 B 씨(여, 50대)는 상시로 사망 및 자살사고 목격에 대한 공포감, 신경증적 불안감의 경험을 보고했다. B 씨는 "우유박스도 오래돼 있고, 문을 계속 두드렸는데 안 열고, 전화를 했는데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났다"며 "평상시 연락이 잘 되는 분인데 너무 무서운 거다. 정말 이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찾동 방문노동자들이 경험한 감정노동은 또 다른 고통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방문노동자들에게 소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자책감, 건강 악화 등의 부정적인 증상이 뒤따랐다. 일에 대한 회의감과 가족에게 부정적 영향이 전이되는 양상도 드러났다.
 
'공공의 종'이라는 인식 개선돼야
 
하지만 감정노동에 따른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에 대한 조직적인 대처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문노동자 대부분이 개인적 차원에서 감내했다. 개인 휴가나 종교활동, 취미생활 등을 통해 상황과 자신을 분리시켜 잊어버리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됐다.
 
사회서비스는 고령사회 진입으로 수요가 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공공부문 찾동 영역에서 일어나는 지나친 감정노동은 찾동 방문노동자뿐 아니라 사회서비스 노동자 전체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국민들이 받을 복지서비스 질적 향상과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감정노동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정훈 센터 소장은 감정노동자가 늘어난 우리 사회에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찾동 방문노동자의 감정노동 보호를 위한 정책 대안으로 △찾동 방문노동자의 감정노동 보호제도 마련 △찾동 방문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안전한 노동환경 구축 △찾동 사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 등을 제시했다.
 
특히 이 소장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해 희생, 봉사, 친절, 공공의 종(公僕)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주민 참여 의식 고양 캠페인과 복지서비스 시민 인식개선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인식개선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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